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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와우 Oct 26. 2021

세상을 미혹케 하는 것들

생각하며 세상을 거닐다

세상을 미혹케 하는 것들

 

 신은 존재할까? 인간의 믿음은 신의 존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들이 인간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분열의 원인이 되게 하는 이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든 종교는 평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정치권력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분열이 종교전쟁으로 대변될 만큼 수많은 사건을 만들어 온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고대국가의 전쟁에서 종교적 신념이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다민족 국가를 이루었고 다양한 신이 존재하던 그 시대에는 권력자가 종교를 이용하는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종교가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출현과 함께하고 있다. 기원후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과 테오도시우스1세의 로마기독교의 국교 승인은 그 시작을 알린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최초의 국가출현과 함께 제정일치의 사회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종교가 분열의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고대 로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7세기경 갑자기 출현한 이슬람 세력은 2000년을 이어온 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리며 불과 한 세기 동안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의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는 종교가 정치권력에 이용되고 이를 통해 정복전쟁에 나서 종교가 분열의 수단이 되어 침략의 명분을 만드는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가 되었다. 이후 중세유럽을 거치고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종교는 전쟁의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심지어 인도는 19세기에 이르러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에 대항하며 대중 신앙으로만 존재했던 힌두교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시키게 한다. 우리의 역사만 하더라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를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가 없었으며 신은 믿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동서양의 모든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종교를 통해 화합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지만 분열의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크리스찬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자의식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곧 나이고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인도철학의 범아일체사상과 그 맥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신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의 하나님은 우주적 존재로 영원하다는 것이었다. 나를 미혹케 하지 않는 하나님!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하나님이다.


 미혹하다는 의미는 사람의 마음이 흐려지도록 홀린다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심어주었다. 감사함의 덕목을 알게 하였고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나누는 삶의 의미도 함께 심어주었다. 그러나 종교적 환경이 나에게 강요하였던 많은 것들도 있었다. 현실의 삶과는 다른 영적 세계의 이야기다.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기적들이 예수의 제자임을 자임하는 이들에게서 시작된 기적의 재현과 그에 대한 소문들이다. 그리고 귀신과 악마에 대한 종교적 접근이다.


 인간이 꿈을 꾼다는 사실은 현실과 다른 세상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꿈을 꾸는 경험이 오래된 자의식의 숨겨진 의미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은 그리운 사람이 간혹 꿈 속에 나오거나 악몽을 가끔 꾸게 되는 외에 특별한 경험을 갖지는 못했다. 예지몽을 꾼다거나 하는 특별한 경험도 없었다. 그럼에도 평소에 생각하는 나의 의식과는 다른 의식의 흐름을 인지시키는 계기는 되었다.


 세상에는 특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목사나 스님들 중에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거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우리의 무속신앙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신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무당들도 실재 존재하고 있다.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부터 주역을 공부하여 사주를 보거나 관상을 보는 이들도 있다. 알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자신을 따르게 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도 존재한다.


 나에게 이러한 이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삶의 고뇌를 함께하고 있는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가 있다. 그는 천막교회에서 시작하여 수백만 성도를 이끄는 대표적인 교단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 그가 보인 능력은 신이 내린 것이라 보기에도 충분한 이적을 보여주었다. 불치의 병자를 고치기도 하였으며 특별히 배우지도 않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해외에서도 많은 신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었기에 설교 단상을 내려오면 교회의 이권에 개입하고 자식으로 교회를 세습시키기 위해 다른 이와 갈등을 빚으며 평범하고 욕망에 찬 인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힘없는 노인으로 죽어갔다. 


 세상을 미혹시키는 자들의 말에는 전제가 있다. 사람의 운명을 정하여 말하는데 있어 성공과 부, 명예란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전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말초적인 개념에서 출발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삶으로 규정하며 부와 명예가 성공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들에게서 삶의 가치의 기준을 듣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의 나약한 허점을 파고드는 미혹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의 의지와 삶을 방해하는 귀신이나 기운은 존재할까?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풍수의 기운이나 생에 미련을 가진 혼령이 존재하여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나약한 마음과 욕망을 파고드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수많은 우주적 기운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주체적 존재로 그 존엄성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러한 귀신이나 기운 같은 것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 된다.


 신의 존재는 인간과 동시한다. 이렇듯 동시한다는 것은 창조의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기에 신이 있으며 신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의식이다. ‘유’와 ‘무’가 동시하고 ‘무한’와 ‘유한’이 동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모든 종류의 신은 결국 하나이다. 단지 그 다양성으로 인간에게 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인간을 미혹하고 있다면 이는 종교를 믿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종교가 어떠한 것이든 그 종교가 갖는 믿음의 모습이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만든 거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도 인간성 회복을 향한 절규였던 것이다.


 인간이 우주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예정된 운명을 따라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운명의 열쇄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 중 우주의 흐름을 역행할 수 있는 자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인간은 서로를 통해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 상호 간의 교류는 우주의 에너지를 나누는 것과 같다. 삶을 미혹시키는 그 많은 말들에 귀를 기우릴 필요는 없다. 개인의 삶을 주관하고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수긍하고 받아들이면 그 뿐이다. 인간은 그러한 행동이 그르던 바르던 스스로가 책임지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스스로의 역사에 있어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번뇌하고 인내하며 서로가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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