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와우 Oct 27. 2021

돈 그리고 빚, 탐욕의 척도

생각하며 세상을 거닐다

돈 그리고 빚탐욕의 척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서 평가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도 깊은 산속이나 무인도로 들어가 최소한의 자급자족으로 스스로 만족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혼자 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치열한 생존 투쟁이 전제되어야 하고 생존에 필요한 학습이 선행되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은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각각의 욕망이 접점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적 인식과 더불어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합의에 공감하는 자세가 또한 필요하다. 공정한 사회적 합의는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공감하는 개개인의 자세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인간의 모든 욕망이 돈으로 가치화된다. 또한 인간의 모든 가치가 돈의 수치로 단순화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의 문제로 계량화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의 발전은 인간의 가치 대상도 함께 발전하여 확장하였고 이런 의미에서 돈은 단순한 인간의 욕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돈이라는 것이 갖는 복합적인 가치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돈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돈은 인간이 가지게 되는 모든 가치에 대한 개념적 표현이다. 사실 돈이란 종이나 합금조각에 숫자를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고 은행의 디지털 장부 안에 기록된 데이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막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다수의 사람이 신용을 부여하며 만들어졌다. 현대사회의 화폐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는 단순환 교환가치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경제라는 개념이 확장되어 삶의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치의 사전적 정의를 생각해 보자.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 또는 상품이나 재화의 효용을 이르고 철학적으로는 인간이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돈의 가치는 이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나 자신의 소유정도를 표시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돈의 가치가 단순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은 돈에 대한 소유와 이에 대한 쓰임의 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한 국가의 재정에 대한 내용과 흐름은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그 사회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평가하는 실질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 구호로 그치는 일을 돈에 흐름을 보고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재정이 공정하게 편성되고 국민에게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되고 있느냐는 것은 정치적 구호에 대한 실천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척도는 도덕성과도 연결된다. 돈에 대한 소유와 그 과정에서도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돈을 번다는 행위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여야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일이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노동시간에 의해서만 정해질 수도 없는 일이고 노동의 수준에 대한 우열을 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의사나 변호사가 하는 일이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일과 사회적 가치를 달리 한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사회가 노동시장에 의해 일의 질을 결정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개인의 부는 노동의 질에 대한 사회의 불공정한 결정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얻게 된 개인의 부가 모두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고도로 숙련된 노동의 대가를 전부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 등의 자격증에 의해 자유업을 하며 고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고도의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이들보다 숙련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렇듯 노동의 가치가 모두가 인정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노동의 대가 여부와 상관없이 자본의 투자로 인한 불노소득의 문제도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이 다수의 투자를 통해 경제의 확대재생산 구조를 만들고 사회경제발전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도 불노소득이란 측면에서만 바라보기도 힘들다. 특정한 사회가 한정된 재화를 나누어야 한다면 그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이러한 자본의 투자가 불공정한 행위로 매도될 수도 없는 것이고 정당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엄청난 부를 혼자 독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한 통계청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발표된 10분위 소득기준을 참고 하여 2018년 기준 국민 1인당 평균소득은 년 3455만 원이고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9673만 원이다. 상위 20%에 대한 하위 20%의 비율로 소득불균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02로 다소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가 현재에도 크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상위 소득만을 보면 소득 불균형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동시에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발표는 상당한 공신력을 갖고 있다. 상위 1%를 기준으로 자산이 평균 60억 원 정도로 나타나고 있음은 다른 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면 상당히 준수한 수준이다. 부동산 자산만을 기준으로 하면 2019년 기준 상위 10%는 8억8000만 원, 상위 1% 30억 9000만원, 0.1%는 158억 원 수준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부를 차지한 사람의 자세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남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자신의 돈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에 의해 정당하게 취득하였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자신이 취득한 돈은 일정부분 다른 이가 가져가야 할 것을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반드시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돈을 빌린다는 것은 마음을 빌리는 것이다. 그리고 빌려주는 사람도 마음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를 받는 행위로 자신의 돈을 불리는 행위는 죄악이다. 이슬람 율법이 이를 금지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대제국을 건설하고 대중에게 무모한 종교적 신념을 만들게 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또 다른 방식으로 없는 자의 돈을 소수가 독식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소비하고 있는 상품의 적정가격에 대하여 진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정가격에 대한 이해다. 상품의 유통은 소비하고자 하는 상품에 대한 용역의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직접 찾아가는 불편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가격이 1000원인 제품이 5000원에 소비자에게 공급되어 이를 비싸다고 느끼는 것은 유통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산품의 대표적인 소비재인 화장품인 경우 생산원가인 공장도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5배의 소비자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류비용과 광고비, 영업비, 이익 등을 포함하여 매장에 공급하는 가격은 소비자 가격의 55-60%에 공급되고 소매점의 마진을 포함하여 최종소비자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유통과정에서 인간의 욕망이 작용한다. 기업은 생산원가를 낮추려하기도 하고 소매점과의 적정가격을 무시하고 직판을 통해 소매점의 이익을 독점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인터넷 판매나 백화점 등의 대형유통망의 과점 시장의 형성은 이를 용이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매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소비자가 공정가격을 이해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의 가격이 얼마나 공정하게 책정되고 있는 지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브랜드가 적정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지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이 지나치게 저렴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다. 사실상 시장에 의해 공정한 가격이 형성되고 시장을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은 허구다. 공정한 가격은 다수 소비자의 공정가격에 대한 요구와 실천, 그리고 관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지인이란 이유만으로 상품을 싸게 구입하겠다고 기대하는 기존의 생각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리다매가 바람직하다고만 생각할 수도 없다. 상품을 싸게 공급하여 자신만을 위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이기적인 상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쟁자들이 생겨나게 되면 이는 공정한 경쟁이라 말할 수 없다. 독과점을 통해 상품을 비싼 가격에 공급하는 것도 근절되어야 하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가격을 파괴하는 행위도 경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돈은 욕망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는 돈으로 계량화되어지고 돈의 올바른 흐름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 돈의 올바른 흐름은 개인 각자가 그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하는 것이고 단순한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인식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돈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사람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 개인 모두가 필요한 재화와 용역에 소비하는데 있어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지 않고 가격의 공정성을 생각해 본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불공정한 경제구조는 변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