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파우스트는 18세기 말~19세기 초 근대 자본주의가 성립될 무렵 독일의 문호 괴테에 의해서 집필되었다. 괴테 자신이 투영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도덕적인 삶을 버리고 산다. 파우스트의 탐욕은 근대 자본주의적 행태와 대비시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악마의 힘에 기대 그의 욕망을 분출하고 그 욕망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여 시장에서 자본축적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는 것과 같다. 국고가 텅 빈 황제의 창고를 채우기 위해 종이를 가지고 화폐를 만든다. 무한정 찍어낸 화폐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때의 풍요를 즐기게 하며 무가치를 가치로 만든 종이에 의지하여 향락에 빠진다. 그 향락이 끝나는 날, 널부러진 종이 조각의 황폐함 속에 파우스트는 가치의 무의미 속에 빠진다.
우리가 갈구하는 돈이란 본질은 그러한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샘물같은 것이다. 거대한 시장 속에 함몰된 수많은 가치들을 찾아내고 내 스스로가 그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족함을 모르고 컸던 지난 날을 뒤로하고 그러한 어린 시절이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도 인생이다. 그러한 풍요로움이 한정된 재화가 내게 주어짐으로 인하여 빈곤하여지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항상 있어 왔음도 분명히 알게 하였다. 그리고 그 궁핍함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고 확신하지만 인생의 노력이 반드시 풍요와 여유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다시 한 번 인생의 역전을 바라고 그러한 무모한 도전에 스스로 갇혀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인생의 도전은 실패의 쓰라린 대가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너무도 쉽게 말한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나 스스로에게 그러한 도전을 권하지는 않는다.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은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가 자신이 경험한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만을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한 바람도 외면되어 오히려 자신이 원치도 않은 강요된 인생의 도전에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는 '인생은 도전이다.' 라는 것을 강요한다. 풍요로움에 대한 요구와 현실이 갖는 차이로 인한 상실감은 현대의 인간을 참으로 비참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예술가의 고뇌, 지식인의 사색, 수도자의 번뇌 같은 것들도 풍요로움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한 풍요로움은 정신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 것에 달렸다.
20년 전 나와 설악산을 함께 등반하였던 형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소한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60세 중반의 나이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차와 음악, 좋아하는 산에 가고자 기회를 만들어 섬을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 그리고 늙으신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생활비 정도면 족했다. 그는 거창하게 도를 닦는 사람도 아니다. 인생에 특별한 목표를 가진 것도 없다. 그러한 인생의 모습을 그가 스물 아홉이란 나이부터 일관되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텃밭을 빌려 작은 농사도 한다. 그가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클레식 매니아인 그는 음향기기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일찌기 구매했던 오래된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턴테이블 등은 그 동안 그의 손에서 하나의 명기가 되었다. 그에게는 오래된 명반들이 있다. 한라산 산장지기를 하며 적은 월급을 모아 하나씩 구매한 것들이다. 그는 앞으로 90세까지 5천만원의 돈이면 충분히 혼자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참 독특한 삶이다.
그에게는 그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가 내어주는 차 한잔과 음악을 함께 나누면 그만이다. 그에게 어떠한 기대나 바램을 갖지 않는다. 그는 내가 인생이 힘들어질 때 나로 하여금 그를 생각하게 하고 그가 내어주는 차 한잔의 여유를 찾게 한다. 예전에는 그의 모습이 작위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가 갖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고 나머지 인생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삶에 이제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술을 파는 조그만 음악카페를 운영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서도 그는 항상 여유로웠고 스스로가 풍족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뇌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였다. 인간의 고뇌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했다. 그는 나의 그 많은 고뇌의 흔적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나의 고뇌에 어떠한 조언이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말에 귀기우려주고 동조해 줄 따름이었다. 그는 나에게 항상 믿음과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 사회는 욕망이라는 인간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인간들은 서로가 이 사회가 누구나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사람들을 부추긴다. 그리고 승자의 권리를 당연함으로 치장하고 그 성공의 미담을 누구나 갖을 수 있는 것으로 세뇌시킨다. 가진 자가 부끄러워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나의 풍요가 많은 다른 이의 것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베풀기 위해서 풍요를 쌓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체계 속에 그 동력을 삼아 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를 정당화한 사회체제이다. 경제발전이란 허상을 만들어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현대사회의 경제구조는 욕망이란 흐름을 쫓아 물 흐르듯 흐르고 있는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항상 턱없이 부족하다. 마법의 샘물과 같이 멈추지 않는 갈증을 만든다.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인간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갈증에 메마른 수많은 절대 다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이용하여 성장하는 자본의 악행을 사회는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로 인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사회 발전을 만들고 풍요를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간의 자유 경쟁 속에 겪게 되는 다수의 실패를 감쌀 수 있는 사회 체제와 도덕적 인식 역시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소수의 자본독점을 경계하고 그 탐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가 지식에 대한 지적탐구의 본능이 있다. 그것은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유로운 지적 탐구가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식은 1등을 하기 위해서 쌓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쌓여지는 것이다. 나이 40이 되니 누구나 삶을 통해 터득한 지식은 있었다. 지식이 평등해지는 것이다. 지혜와 이해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지식은 누구에게나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지식이란 것 또한 세상의 일부를 위한 필요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지식이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그러한 지식의 전부를 습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지식의 오만은 참으로 인간을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인간의 지식은 어느 하나 분명한 것이 없다. 과학만능주의 속에 성장했던 우리 세대에는 어쩌면 또 다른 속단과 편견을 수없이 낳고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가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사회가 그 기준을 등수에 의해서 나누어짐도 불합리하다. 현대사회는 지도자가 나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나를 대신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것은 지도자가 희생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요구받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이 현대사회의 꿈을 만드는 힘이 되었다. 현대사회의 지도자는 인격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요구된다. 그래서 독재 자체는 인격적 결함으로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의 독점이 인격적 완성을 포기하는 변명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