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인간의 탐욕⑤


한 교수가 그의 철학 강의실에 서 있었고 그의 앞에는 몇가지 물건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말없이 비어있는 매우 큰 마요네즈 병을 집어들고 그 안을 골프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이 병이 꽉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동의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약돌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았다. 교수는 가볍게 그병을 흔들었다. 조약돌은 골프공 사이의 공간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이 병이 가득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동의했다. 그 교수는 다음으로 모래 한 상자를 들어 그 병안에 쏟아 부었다. 역시 모래는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다시 한번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교탁 아래에서 두 병의 맥주를 꺼내 마요네즈 병 안에 모두 쏟아 넣었고, 맥주는 모래사이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채웠다. 학생들은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가라앉자 교수가 말했다.

"나는 자네들이 이 병이 자네들의 인생임을 알았으면 하네. 골프공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야. 자네들의 가족, 자녀, 자네들의 믿음, 건강, 친구 그리고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 말이네. 자네들 인생에서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것들만 남는다 해도, 그 인생은 여전히 꽉 차 있을 거야.

조약돌은 문제가 되는 다른 것들이네, 자네들의 직업, 집, 차 같은 것들이지. 모래는 그 외 모든 것들이지. 사소한 것들 말이야.."

"만약 자네들이 모래를 병속에 가장 먼저 넣는다면...

그렇다면 조약돌이나 골프공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거네.. 인생도 이와 같네. 자네들이 자네들의 시간과 힘을 그 작은 것들을 위해 써버리면, 평생 자네들에게 중요한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 꺼야..


자네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에 집중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게.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이걸 다시 반복하게. 집을 청소하고 잔디를 깎을 시간은 언제든 있을거네.

골프공을 먼저 살피게, 진정 중요한 일들 말이야.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남은 것들은 그냥 모래일 뿐이네."

학생 중 한명이 손을 들고 맥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줘서 고맙네. 이건 단지 자네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득찼든지 간에, 언제나 친구와 맥주 한두 잔 나눌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네..“


그러나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은 그 모든 것이 언제인지 모르게 뒤섞여 채워지는 것이다. 그 순위가 뒤바뀌어 있음을 알게 되면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 채워지도록 그 병을 마구 흔들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을 마구 흔드는 고뇌의 흔적은 비록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그 가치는 진리로 보답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 잔의 술을 기울임도 잊지 말아야한다.


욕망과 포용.


생활 속에 의욕을 갖는다는 것은

삶의 순간 순간을 참으로 빛나게 하여 주는 필수 요소이다.

의욕적인 삶.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벅찬 정열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욕의 뒤편엔

항상 욕망과 집착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마땅하다’는 삶의 의욕의 껍질을 둘러싸고

인간 스스로 자신을 속이게 하는 과오를 범하게 하며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결국 연속된 과오의 순환을 저지르게 한다.

인간의 의욕은 반드시 욕망과 집착으로 이어진다.

참으로 인간을 허무하게 만드는 사실이지만

이는 인간의 한계성의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육체를 입은 실체로서의 인간한계.

인간은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패배감을 감추고자

허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한다.

인간의 진보적 개조, 인간능력의 무한함, 초인적 잠재력 같은

욕망이 없는 삶이란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러면 욕망과 집착을 정당화하면 어떨까?

우리는 인간이 그 한계성에 부딪힐 때마다

상습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정당화하여 왔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의욕적인 삶이란 욕망, 집착, 이상, 기대, 바람, 독선, 아집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삶을 영유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 인식되는 순간

인간은 극도의 공허를 느껴야만 한다.

이렇듯 영혼의 허무의식은 인간육체가 매 순간마다 느껴야 하는

필연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느끼는 극도의 허무감은

살아있는 육체로 하여금 영원한 세계를 인지케 한다.

이렇듯 우주적 세계는

모순되게도 인간의 패배감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반전의 인식과 기회를 우리에게 부여하여 왔다.

세계를 인지하고 그 세계를 포용하는 것.

인간의 작은 가슴에 품으려 하는 적극적인 의지

이것이 살아있는 육체의 최선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포용은 또한 배려이다.

하나의 세계 안에 있는 모든 상대에 대한 배려는

그러한 감정뿐만 아니라

객관적 인식의 당위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주관의 나와 상호 작용하는 그 모든 객체에 대한 배려 없이

세계를 포용할 수는 없다.

곧 배려는 실천이다.

인간의 의욕은 욕망과 집착을 갖게 하며,

이는 함께하는 모든 상대적 객체를 포용하는

배려의 실천을 통하여 세계를 인지하는 가운데 극복되는 것이다.


육체의 한계.


이에 대한 인식은 인식의 순간, 극복을 시작하는 것이며

인간의 삶은 오류를 통해 반복되는 의지를 요구할 뿐이다.

반복되는 인간의 고뇌는 하나의 발전적 사이클을 이루며

세계의 인식에 다가서는 것이며,

인생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리라.

살아있는 육체는 실천을 요구 받는다.

이것은 도전이며,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은

존재 덕목의 최고를 이루는 것이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위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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