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을 하루 앞두고 중1 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반 아이들 카카오톡 방을 새로 만들어서 딱 한 마디 ‘님들, 내일이 만우절인데 그냥 지나가실 겁니까?’ 했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은 카카오톡 방을 아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답니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문자들은 우리 집 아이도 “엄마, 얘네들 그동안 어떻게 살았지? 말을 참고 있었나 봐.”라며 놀라워합니다. 우리 집 아이가 의견을 내기도 전에 다들 계획 말하는데, 아이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1학년’을 모은다는 것이 담임선생님까지 초대를 한 것이지요. 아이는 부랴부랴 방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비밀리에 준비해야 하는데, 사건의 주동자까지 밝혀진 상황이 되어 버렸지요. 이미 멈출 수는 없고, 아이는 친구들이 세우는 계획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을 합니다.
만우절 날 아이가 보여준 사진은 정말 재미있다고 하기보다는 놀래 놀 자가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책상을 옆으로 눕히고 아이들은 그 밑에 들어가 죄다 누워 있습니다. 아이 표현에 의하면 ‘우리 반 대단하다!’입니다. 여러 사진 중에서 제 눈을 잡은 건, 교복 입고 등장하신 담임 선생님입니다. 교복 입은 젊은 여선생님은 참 모범생 같아 보이는데, 셔츠 한쪽만 삐죽이 내놓아 재미를 더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주동자로 혼이 나는 서프라이즈와 세일러문 마법 봉 같은 것을 대표로 혼난 기념으로 받아 왔습니다. 혼나면서 받은 은색 봉을 자랑하며 어찌나 귀하게 다루는지 그냥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만우절에 치른 또 하나의 사건은, ‘선배 찾아가서 고백하기’ 였답니다. 아이들의 계획은 ‘사랑 고백’ 이었지만, 쑥스러움에 그렇게는 못하고, 복도에서 만난 선배에게, 2학년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남자 선배에게, 1학년 여자아이 둘이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선배님. 선배님 참 잘 생기셨어요.”라고 했답니다. 여자 선배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저희 아이를 쳐다보고요. 당사자는 기분이 좋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여자 선배는 ‘수현아, 정신 차려!’라며 등을 한 대 때리고, 아이 표현에 의하면 선배들이 난리가 났답니다.
저희 아이는 학교 농구부로 2학년들과는 친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체육관에 한 번씩 가서, 같이 연습을 해 온 터라 알게 모르게 친함도 있습니다. 아이가 잘 생겼다고 말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당사자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는 농구부였지만, 3월 한 달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고, 농구부를 나간 상황이라 농구부 선배라 말하기도 참 애매하긴 합니다. 아이 말로는 농구를 제일 잘 하는 선배랍니다. 농구만 보이는 아이라서 이해가 되기도 하기는 합니다.
이날 이후 2학년 남자아이는 저희 아이와 복도에서 만나면 악수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하루는 2학년 여자 농구부 선배에게 문자가 옵니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니요’ ‘잘 생긴 남자 선배는?’ ‘그냥 아이돌이에요’ 이어 남자아이에게 문자가 오고, ‘학교 어디 나왔어? 농구 재밌어? 지금 뭐 해? 농구부 중에서 누가 놀구 잘 해?’라며 별거 아닌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뭐가 신이 나는지 제 어깨를 두드리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엄마인 저는 레이더를 발동시킵니다. 남자아이가 일진 흉내 내는 착한 아이라는 정보를 듣고 우리 집 아이를 단속합니다. 학교 끝나고 마을버스 타고 오는 아이를 시간 맞추어 데리러 다녔습니다. 아이는 엄마 오지 말라고 하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데리러 갔습니다.
‘선배님 잘 생겼어요!’ 이 한마디에 아이도, 당사자인 남자 아이도 신이 났답니다. 1학년 같은 반 남자 아이는 제 아이 앞에서 잘생긴 남자 선배를 껴안고는 ‘부럽지! 부럽지!’ 했다며 웃습니다.
“엄마, 놀이터로 가 봐!”. 아이의 말에 차를 놀이터 쪽으로 돌립니다. 젠리 어플로 잘생긴 남자 선배가 놀이터에 있는 게 보입니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가리키며 ‘잘 생겼지!’라고 이야기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뒷모습만 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좀 더 크고 다부져 보입니다.
토요일 농구부가 끝나는 시간에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우루루 나오고 왠 아이가 교분 앞 인도를 킥보드로 아주 신나게 타고 다닙니다. 누가 저렇게 타고 다니나 봤더니, 잘생긴 선배입니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가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농구부가 아니라 체육관에는 못 들어가고 친구들 기다린다고 킥보드로 쌩쌩 돌아다니다 봅니다. 속으로 웃습니다. ‘시간 딱 맞추어 킥보드 타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귀엽습니다. 저는 아이를 태우고 놀이터를 끼고 한 바퀴 돌고는 조용히 킥보드를 쫓습니다. 멀리서 봐도 운동 잘 하게 생겼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쳐다봅니다. 아이는 잘생긴 남자 선배 주위로 있는 아이들 이름을 알려줍니다. 참 귀엽게도 생겼습니다. 킥보드가 움직이고 차도 돌려 옵니다.
종종 아이가 들려주는 잘생긴 남자 선배는 아이에게 참 다정하게 대해줍니다. 엄마가 레이더를 세우는 선은 넘어 들어오지 않고요. 아이도 친구와 다른 선배들에게 ‘잘생긴 선배는 저에게 아이돌이에요’라고 말을 해 놓아, 더는 관심 들을 갖지 않습니다.
잘생긴 남자 아이가 일진이라는 말에 한동안은 제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바짝 안테나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소속되어 있는 농구팀에서 제일 잘 한다는 말, 그래도 착하다는 말, 동생을 참 잘 챙긴다는 말, 엄마가 없다는 말에 그 긴장감이 사라지고 학교 갔다가 잘생긴 아이 뒷모습을 보면 참 반갑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학교 농구부로 다시 들어와서 더 신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상하게 놀이터에서 잘생긴 아이가 저희 집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는 말을 들으면 저도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