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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Apr 15. 2022

한 달 후에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손전등 불빛이 눈부시게 쫓아온다.

들켰다.

시험이 끝나 도서관이 자율학습으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으로 바뀐 날, 우리는 교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대화를 시작하고 창밖이 깜깜해질 무렵에는 진실게임을 하면서 하나하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야기에 한참 빠지다보니 불을 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지고 대화는 더 깊어졌다. 우리는 아저씨를 향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깜깜한 시간에 교실에 있는 게 죄송한 거다.

운동장으로 나오니 수위실만 환했다. 수위 아저씨는 교문의 쪽문을 열어 주셨다. 벌써 30년 전 이야기인데 그때 아저씨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다만 불을 켜지 않았다고 나무라시며, 말소리가 들려서 올라오셨다 했다.

깜깜한 학교, 적막한 학교에서 여자아이들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서 올라오셨는데, 우리를 보고 놀라지도 않으셨다.

우리는 천천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교문부터 버스정류장까지는 경사로다. 학교 뒤로 산인 걸 보면, 아마도 몇 십 년 전에는 나무가 빽빽한 산이었을 거다. 그 산을 정비해 학교를 지었을 테다. 그러니 나는 날마다 산꼭대기를 향해 등산한다고 봐야 한다.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쉬었다. 힘들이지 않고 내려와서 셋은 같은 버스를 승하는 반대쪽으로 갔다. 셋이 같이 오면서 혼자 가는 승하에게 미안해했다. 길 건너 승하가 탄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고 흔들고 했다.

두 정거장 와서 내가 내리고 둘은 한 정거장씩 차례차례 내릴 거다.

진실게임. 은미가 물었다. 가족에 대해. 그리고 또 물었다. 왜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은미는 그게 궁금했던 거다. 내 입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승하에게도 물었다. 왜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승하는 그랬다,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한 달에 딱 한 번, 시내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데, 엄마에게 봉투만 전해준다고 그리 말했다. 말도 별로 안 하는데, 호텔 레스토랑 밥이 맛이 있어서 한 달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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