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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좀 쓸어 볼까요?

by 햇살처럼

걸음을 재촉하여 대문을 나서는데 자동차 위로 하얀 눈이 소복, 다행히 자동차 걸레로 밀렸다. 앞 유리와 뒷 유리만 툭툭 밀어내어 시야를 확보하고 큰 길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아침이라 눈을 쓰는 사람이 없어 골목에 눈이 떨어져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 등교가 우선이라 뒷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큰 길에서 나머지 눈을 마저 털어내고 달렸다. 13분이나 지체하여 내부순환로를 들어가는 길목에서는 평상시보다 조금 더 막혔다. 강북에 사는 불편함,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거북이다. 올라오는 길은 시원스레 달리는데 말이다. 내부순환로는 6시 50분이 안 되어 통과를 해야 씽 달릴 수 있는데, 그 시간 즈음이 되면 브레이크를 밟는 시간이 길어진다. 내가 눈과 실갱이를 하는 동안 아이는 풍경이 예쁘다고 영상과 사진을 휴대폰에 담으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하얀 눈을 살짝 품고 길 양쪽으로 죽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들이 예쁘기는 했다. 그 도로를 달리는 즐거움. 아이는 엄마와 첫눈을 맞은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소설(小雪), 11월 22일에서 23일, 음력으로는 10월, 첫눈이 내리는 시기라는데 올 해는 폭설. 날씨가 포근해서인지 길이 얼지는 않았다. 낮 햇볕은 눈을 녹여 이번 첫눈은 밉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평지 주택가로 눈이 내리면 사람들이 빗자루와 밀것들을 들고 골목으로 나온다. 보통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우리 집도 나이가 제일 많은 할머니 전양근씨가 마당 눈을 대야에 담아 큰 길로 퍼다 버리며 눈 쓸기가 시작된다. 예전 같으면 자동차 위의 눈도 전양근씨가 치워줬을 텐데, 노환으로 몸이 안 좋아지면서는 눈이 와도 내다보는 시간이 늦어졌다. 전양근씨보다 더 부지런한 앞집 아저씨가 먼저 골목을 치우는 경우가 많다. 여섯 집 중 네 집이 골목으로 대문이 났는데, 우리 집 맞은편 아저씨가 세 집보다 조금 젊다고 대부분 먼저 눈을 치운다, 투덜대면서. 나 혼자 양쪽 골목을 치울 때는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좁은 길에 왜 그렇게 눈이 많은지. 눈을 밀면서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하고, 강추위일 때는 낮에 녹아 밤에 얼지 말라고 빗자루로 쓸어야 했다.

이 집은 잠시 머물러 갈 집이었다. 돌쟁이 아이가 있던 나는 서울에서 보기 드믄 조그만 마당이 있는 집을 만나고는 엄마를 졸랐다. 부동산에서는 곧 재개발이 될 거라고, 적당히 수리해서 살면 5년이라고 했다. 대문 안 마당에서 세 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엄마를 설득해서 산 집이다. 개발이 무산되고 여태 살고 있는데, 남편은 코로나 시절에 이 집을 고마워했다, 우리 가족만 살아 좋다고.

이 집 와서 한 해 지나 2009년 11월 26일에 둘째가 태어났다. 그 때는 눈도 많이 내렸다. 한 달 지났으려나. 초인종이 막 울려 나가봤더니 함박눈이 내리는 골목길을 사람들이 나와서 눈을 쓸고 있었다. 세 집에서 할머니 두 명, 할아버지 한 명, 아줌마와 아저씨가 나와서 눈을 치우고 있었는데, 우리 집만 나온 사람이 없다고 앞 집 아저씨가 큰소리를 냈다. 나도 참 그랬다. ‘저 아이 낳은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요’ 라고 말을 했으면 되었는데……. 전양근씨는 어디를 갔는지 없었다. 앞 집 아저씨는 눈이 내리면 전양근씨보다 한 템포 빠르게 눈을 쓸어 우리 집 담벼락으로 밀어 놓았다. 전양근씨는 담 무너진다고 큰소리를 내며 그 눈을 다시 중앙으로 밀어놓았다. 아저씨가 우리 집 담으로 눈을 미는 데는 장사를 위한 수레를 끌어 짐을 싣고 내리기 때문인데, 전양근씨는 이사 온 첫 날부터 앞 집 아줌마가 왜 집을 짓지 않냐고, 이 집이 새로 지어져야 골목이 넓어져서 자신네 차가 골목으로 쑥 들어온다며 심기 불편한 말을 던진 덕에 배려를 끊었다. 이 아줌마 아저씨를 나쁘게 생각하는 덕에 더 말하고 싶지 않아 같이 한참을 눈을 치웠다. 눈은 계속 내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그 당시 불편한 말을 던진 아저씨에게 습기가 찬 안경을 낀 나는 날카롭게 몇 마디 던진 걸로 기억한다. 반격을 당하지는 않았다. 내가 말을 야무지게 했고, 아저씨의 목적은 우리 집 누군가를 나오게 하는 거였으니. 눈이 많이 내리는 철이라 날마다 힘들기도 했을 거다. 나는 그 해에는 그때만 나가보고, 이후에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출산한 지 100일이 안 되어 나가 눈을 쓸었노라고 전양근씨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나가 눈을 쓸었노라고 투덜거렸으면, 전양근씨는 앞 집 아저씨를 100일도 안 된 산모에게 눈 쓸기를 시켰다고 이 골목에서 나쁜 놈으로 두고두고 욕을 했을 터다.

이 번 폭설은, 남편 회사는 재택근무를 허용했고, 고속도로에서 53대의 자동차가 추돌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남한산성 인근 도로는 나무가 쓰러져서 도로가 막혔고, 어린이집 휴원과 학교는 휴교령으로 발이 묶인 학부모들이 있었고, 우리 동네 누군가는 5시부터 일어나 눈을 치웠지만 나에게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아이를 등교 시키고 오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미 골목을 쓸었고, 내가 다니는 자동차 길은 제설차가 다니면서 염화칼슘을 뿌려주어 눈은 내리면서 바닥에서 금세 녹았다. 아이 학교 주변은 녹은 눈이 빠지지를 않아 흥건했는데, 아이 신발이 푹은 아니고 밑창이 살짝 첨벙하며 들어갔다 나왔다. 아이가 짜증을 내지 않고 차에서 내렸으니 내겐 감사가 입에서 돌았다.

사실 눈이 내리면 골목을 쓸어야 하는 동네에 사는 나는. 지난 몇 년,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아 고마웠다. 사실 눈 쓸 시간도 없다. 하지만 이것이 지구의 온도 때문이라면 어째 서글프다. 이번 폭설이 소설(小雪)답게, 기분 좋게 조금만 첫눈이 내렸으면 어땠을까. 첫 눈이 내리면 창문이 넓은 2층 혜화동 커피숍으로 달려가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100일 안 된 산모가 나와서 골목을 쓸어야 했던 그때가 그리운 순간이다. 올 해는 건강한 눈이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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