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바람난 투자

3. 인플레이션 이야기 : 오징어 게임 속 추억의 달고나

by 콜라나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자꾸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니 말이다. 이는 요즘 말로

'라떼에는~'으로 바뀌었다나?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내가 국민학교 시절(요즘은 초등학교)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띠기'가 있었다.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먹는 일종의 바삭한 과자다. 그 시절에는 간식 종류가 별로 없었다.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 문방구가 있어 반드시 거쳐가곤 하였다. 필기구를 사지 않아도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었고,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풍부했다. 어김없이 그곳에는 띠기가 있었다. 이 외에 유람선 모양이나 큰 잉어 모양의 물고기, 조그마한 동전 모양의 엿 조각들도 있었다. 이들 간식 중 유독 띠기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 나는 손재주가 없어 한 번도 모양을 유지하면서 오려내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을 보니, 주인공이 침으로 기막히게 오려내는 걸 보고 감탄했다. 아하! 저런 방법이 다 있었다니! 머리가 정말 좋구나! 시나리오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을 재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재급 아닌가! 나는 조금 하다가 중간에 망쳐 와그작와그작 씹어댔었다. 급한 성질 때문에 여유로이 작업에 몰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게임에서는 난 이길 수 없었다. 보상을 받지 못하니 슬슬 흥미를 잃었다. 이때, 띠기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이 그 시절에 매번 엄마에게 100원 만을 외치며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은 기억한다. 그 당시 100원이면 2~3개 정도의 간식을 살 수 있었다.

동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성별은 여자고 별명은 100원 만이다. 이 애칭은 내가 지었는데, 그때 동생을 향해 100원만! 100원만!으로 호명했다면 큰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심으로만 100원 만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기질이 거칠고, 야성적이었다. 놀이도 남자아이들이 모여하는 말뚝박기,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잘했다. 오징어 게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아이가 잠은 많아서 한번 곯아떨어지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잠버릇 없이 곤히 얌전히 자는 편인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소리에 예민하고 민감한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웬 엉덩이 하나가 눈앞에서 떠 억 하니 시커먼 물체로 보였다. 깜짝 놀라 일종의 손바닥 반사 운동으로 엉덩이를 밀쳐냈는데, 그 엉덩이 주인공이 내 동생 100원 만이었다. 이 아이가 잠결에 내 머리통을 요강으로 착각하고 아랫도리를 벗고 있던 찰나, 엄마가 이를 보시고 경악해서 내지른 급박한 소리였던 것이다. 그때를 상상해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시절에는 요강을 방에 두고 살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거 문화는 참 실용적이다. 하나의 방에 요와 이불을 깔면 침실이요, 밥상을 두면 식사실이요, 요강을 놓으면 화장실이다. 완전 다목적 방이다. 그 사건이 있던 다음날 아침, 마음이 진정되고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떻게 100원만이 내 머리 위에서 오줌 싸려던 찰나를 알아차렸어?" 엄마가 "아~ 글쎄, 네 머리를 좌우로 만져대고 있길래 무엇을 하는 자세인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듯해서 지켜봤지."라고 답하셨다. 아무튼 일을 치지 않아 다행스러운 사건 중 하나다.

그 당시 띠기 가격이 100원이면, 오늘날 달고나 가격은 얼마일까? 물론 오징어 게임에 힘입어 가격이 상승했겠지만 비교해보자. 추억의 불량 식품이라는 명칭으로 1개 최저가 160원인데, 배송비 포함 2,660원이다.

1973~1984년도 띠기 가격은 최저가 10원~최고가 30원이었다. 그러면 배송비 제외한 판매가로만 계산하면, 16배가 오른 셈이다. 배송비까지 포함해야 우리 손까지 오니까 이를 더하면 266배 상승하였다. 국민학교 6학년 때라서 그 당시 물가를 기억을 못 해 엄마 찬스를 이용한 결과, 당시 필수 소비재 가격은 다음과 같다.

1970년대 라면은 20원대, 쌀 한 가마니(80kg)는 3,500원대, 쌀 1되 5원에서 시작해서 해가 지나가면서 50원, 100원으로 상승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생필품 가격을 잊지 않은 이유는 특별한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가 농사꾼이셨는데, 엄마 나이 17~20세 무렵 최고가로 팔고 귀가하시며 좋아하셨던 표정을 기억하신 덕분이다. 그 가격이 3,500원이다.

동생이 국민학교 2학년 시절이니 1980년대다. 이때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이 50원이었고, 콘류는 100원이었다. 이 기억은 나도 있는데, 사촌 여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엄마가 50원짜리 하드(당시 막대 모양의 아이스크림류를 총칭하여 불렀다)를 사주셨다. 나도 같이 먹었다. 50원짜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던 시절에, 사촌 여동생은 "큰 엄마, 나는 100원짜리가 더 맛있는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 말이 귀엽게 들리셨나 보다. 없는 살림에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던 날은 나에게 호사스러운 기쁜 날이었다. 속으로는, 사촌 여동생이 우리 집에 자주 왔었으면 했다.

다음 일화는 지금도 기억하고, 현재 나를 내적으로 성장시킨 이야기다.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에도 이웃이 어려우면 선뜻 연탄 백장을 주시는 분이었다. 그 이웃은 선물을 받은 해에 얼어 죽지 않았다. 당신 혼자서 백장을 사줄 형편이 못돼, 또 다른 분을 설득하여 함께 실행하셨던 모양이다. 연탄 100장에 1인 9000원*2인 =18,000원이다. 2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연탄 100장을 창고에 들여놓고 겨울 한 해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다. 동시대 단독주택 가격은 2,000~3000만 원 하였다. 당시 어머니가 단독 주택단지 골목으로 자주 다니셨는데, 그곳에 지인이 살고 있어 왕래가 잦았다. 꼭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가던 길에 혼잣말로 기운 없이 말하셨는데, 좌우로 집을 구경하시면서 당신이 마음에 둔 작고 예쁜 꽃밭이 달린 집을 보시곤 "이 집이 2,000만 원이라는데 너무 예쁘지 않니?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원하시던 것을 해드리고 싶었는지 송곳처럼 박혔다.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표정은 너무 평온하고 눈빛은 반짝였다. 또 다른 아담한 집도 구경하시며 1,000만 원짜리 집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때 단독주택에서 전세로 40만 원에 살고 있었다. 엄마의 고향에 사시는 지인은 3~5층짜리 건물을 5,000만 원에 구입하고 자랑하셨다고 한다.

위의 과거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쓰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계산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알 것이다. 요즘 아파트 가격을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상승하였다는 것을. 부동산만 오른 것이 아니다. 필수 소비재 가격도 상당하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국토교통부 통계 포탈 아파트 매매 실거래 평균 가격을 2021.7월 기준으로 살펴보자. 전국 단위 평균가는 533,700,000원이다.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셨던 단독주택 가격이 2천만 원이었고, 평균가에 해당하여 계산하니 약 27배 상승한 것이다.

오늘날 라면 가격은 3,000~5,000 원하니까 평균가로 4000원으로 계산하면, 당시 20원이었으니 200배 오른 셈이다. 대략 37~48년간 라면은 약 200배, 부동산은 약 27배 상승했다고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인플레이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알게 모르게 물가는 상승하고 우리의 월급은 하락하기 때문이다. 나의 월급이 인플레이션으로 매일 쪼그라들고 있음을 잊지 말자. 주부들은 장바구니 물가라고 해서 잘 안다. 100원만 저렴해도 좋아하면서 담지 않나. 이런 푼돈을 아껴서 부자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장바구니를 잘 관찰해보자. 내가 어떤 제품을 담았는지 보고, 그 식품회사의 주식을 사보자. 20~30년이 지나 당신의 자녀는 인플레이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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