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05. 내 엄마 순옥

by 강날개


생각만 해도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이

모두에게 있을까?

우리 할매에게는 있다.


그리고 우리 할매는 내게 말한다.

나를 붙잡고 그 세월을 지나왔다고




우리 할매는 알코올중독자였다.


할매에게는 3명의 자식들이 있다.

큰 고모, 작은 고모, 우리 아빠


하지만 원래 큰 고모 위로 고모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할매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가슴에 묻어둔 자식 은주. 할매는 은주고모가 4살이 되던 해에 고모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 옆을 봤더니 잘 놀던 고모가 사라져 버렸다고

그 이후에 할매는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술은 할매를 집어삼켰고, 그 대가는 오로지 자식들이 지어야 했다.


큰고모는 동생들의 엄마 노릇을 일찍이 시작해야 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부부싸움은 자식들에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집을 벗어나고 싶던 고모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했고, 우리 아빠는 17살이 되던 해 가출을 했다. 그 풍랑에도 할매는 여전히 술을 끼고 살았고, 뱃사람이던 할아버지는 집 보다 바다를 편안해했다. 그렇게 애달픈 세월이 흘렀다.






3년 만에 집 나간 아들놈이 돌아왔다.

포대기에 손바닥만 한 새끼를 품고서.

그게 할매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할매는 술을 끊었다.


엄마, 아빠는 서울에 봉제공장을 차렸고, 잠시만 나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할매를 찾아왔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내가 3살 무렵 엄마, 아빠 사업이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큰돈을 거머쥐자, 아빠는 목포에서 날 데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던 걸까. 나는 매일 할매를 찾으며 기절할 정도로 울어댔고, 아빠는 결국 새벽 3시에 할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엄마.. 데려가쇼..”


할매는 첫 차를 타고 날 데리러 왔다. 엄마, 아빠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날 꼭 안고 목포로 휙 내려갔다고 한다.


아빠는 가끔 이 이야기를 꺼내며 후회한다고 했다.

참고 더 달래 볼걸.

껴안고 살아볼걸.

그랬다면 지금 보다는 덜 부끄러운 아빠였을텐데.


음...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때 그 선택을 해줘서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이 내 가슴을 쿡 하고 찌를 때가 있다. 괜히 쪼그라드는 기분이 든달까?

하지만 그 기분이 날 집어삼키지는 못한다.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랐단 걸.


집안의 첫 손주로 태어나 누구보다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할매와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다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나를 키웠다. 그렇게 할매는 알코올중독을 벗어났고, 평생 표현 한마디 하지 않던 경상도 사나이 할아버지는 나를 물고 빨며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러니 내가 작아질 이유가 없다.


할매는 나를 붙잡고 아픈 기억을 지나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말한다.

그대가 나에게 쏟은 사랑들로 나는 아픈 기억을 지나가고 있다고.


그래서 할매를 만난 나는 무지 운이 좋다고.


할매,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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