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명랑한 그대가 아프다

02. 내 보물 깡보

by 강날개


유전자는 무섭다.

깡보와 나는 닮았다.

떨어진 세월이 무색하게 우린 닮아있었다.

이마부터 코라인이 같았으며,

짧은 턱과 둥근 얼굴, 목소리가 닮았다.


그래도 서로가 각자 객체임을 애쓰듯

다른 점도 있었다.


깡보는 키가 크고, 나는 작았다.

나는 시골소녀라 핑계대기 좋으나

사실 타고나게 까맸으며 깡보는 하얬다.


유전자가 같아서, 혹은 다른 점이 신기해서

우린 서로의 구원자가 된 건 아니었다.

우리를 애틋하게 한 건 공공의 적 덕분이었다.

그래, 우리에게는 공공의 적이 있었다.




엄마는 공공의 적이었다. 섬 소녀였던 그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이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7살 서울로 상경해 봉제공장을 다니며 기술을 익혔고,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팔며 큰 성공을 거뒀다. 작은 가게는 어느새 작은 기업이 되었고 가난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그녀는 다시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살았다. 대외적으로 훌륭한 기업인. 그러나 애석하게도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날이 서있었다. 그녀의 사업 성패는 어린 자매의 하루를 결정짓는 잣대가 되었다.


언어폭력과 폭행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날 혹은

느닷없는 용서구애와 돈으로 이어지는 보상의 날


내가 처음 이방인으로 그녀 품에 안겼을 때 그 칼날은 내게 쉬이 오지 않았다. 그건 오로지 깡보의 몫이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그 아이의 쓰러짐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내가 지켜야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아는 것과 다르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그 아이를 감싸 안고 폭행 속으로 뛰어드는 것 밖에는


늦은 밤 아파트 놀이터에 나란히 앉아 가출 계획을 세우는 것과 공중전화박스 앞을 서성이며 할매와 아빠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상상은 어느새 우리의 놀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어린 시절이 저물어 갔다.






나는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드라마 속 대사처럼 깡보는 명랑했다. 어른들은 말 수가 적고 의견피력이 명확한 나를 보며 일찍 철이 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난 잔뜩 겁을 먹고 몸을 부풀린 상태였다.


깡보는 잘 떠들고 애교가 많았다. 실없는 농담과 해맑은 웃음은 집안의 분위기를 녹이고 엄마의 폭행을 잠재우는 깡보의 능력이었다. 서글픈 능력치가 만개했을 때 엄마의 사업이 고점을 향해 달리며 폭행은 잦아들었다. 우린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날이 더 많았고 그건 눈 감은 평화였다.


이런 삶에 서로가 익숙해지자 과거의 과오는 없었던 일인 양 화목한 가족놀이에 모두 다 심취해 있었다.

나는 그게 역겨웠다.


"넌 저 사람이 좋아?"

"불쌍하잖아... 그래도.. 엄마니깐.."


"(새) 아빠는 왜 저런 사람이랑 결혼했어요?"

"그래도 불쌍한 사람이야.. 마음도 약하고.."


난 쉬이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엄마의 과거가 폭행의 정당화가 되는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분노가 내 머리를 잠식해 갈 쯤 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7살 여름, 나는 다시 할매 품으로 돌아갔다.


현장 일을 시작하며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아빠의 뒷받침과 내가 뿜는 냉기에 은근한 불편함을 갖고 있던 엄마의 동의가 내겐 행운이 되었다. 그렇게 자매는 또다시 이산가족이 되었다.


행복했다.


그리웠던 바다

변치 않은 할매의 사랑

온기 가득한 집

정 많은 친구들


분노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오롯이 홀로 누리는 평화



"언니.... 나도 언니한테 가면 안 될까...?"



깡보가 울면서 전화가 왔다. 구조 요청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빠는 내게 고백했다. 딸이 울면서 전화가 왔을 때 큰소리치며 책임지겠다 했으나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던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한심했다고, 그래서 돈이 무서웠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의 계산기가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깡보는 내려오지 않았다. 명랑한 목소리로 이리 이야기했다.


"이제 괜찮아! 안 내려가도 될 거 같아!"


난 못난 언니였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란 걸 난... 알았어야 했다.

내 손을 처음 잡아주던 그 아이처럼

나도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았어야 했다.

내 삶 가장 큰 후회는 그렇게 새겨졌다.


토요일 연재
이전 06화그렇게 자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