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침묵

침묵

by 여행강타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힘을 가진다.

많은 말을 쏟아내는 대신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

침묵은 때로 진심을 담는 가장 솔직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가장 큰 장점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감정이 격 해졌을 때 쏟아내는 말들은 대부분 후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잠시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더 나은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말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더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말로 오히려 왜곡되기 쉬운 마음들이 침묵 속에서 더 진실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침묵은 때로 지혜이고, 때로는 비겁함이다. 중요한 것은 침묵을 선택하는 '타이밍'과 '의도'다. 상대를 위한 침묵인지, 나를 지키기 위한 침묵인지, 아니면 그저 귀찮고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를 스스로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침묵이 나중에 말을 대신할 수 있다.


말보다 값진 침묵이 있고, 침묵보다 소중한 말이 있다. 말보다 침묵이 더 진실할 때도 있고, 침묵이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늘 선택하며 살아간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만의 평온을 위한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침묵은 쉬운 선택이지만, 그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지난주 '시니어 동행 편의점' 상반기 결산 보고회가 있었다. 요일별, 시간별 근무하는 여성 시니어 8명과 남성 시니어 2명, 사회 복지사와 팀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되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다들 돌아가며 자신들의 생각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개선했으면 하는 일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의 대처법 같은 것들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침묵했다. '유구무언'이란 말 한마디만을 남겼다. 나의 침묵 안에는 많은 말들을 담고 있었고, 여러 사람이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편의점에 물건 사러 오는 손님 중엔 별의별 사람들이 많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지금은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례하게 행동하던 사람들도 한결같이 친절함과 웃음으로 대하니 많이 유연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대체로 평온한 일상의 나날들이다. 문제는 함께 일하는 동료 시니어들이다.

어느 모임, 어느 집단이나 문제가 있거나 튀는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내가 알바하는 곳은 천주교 제단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동행 편의점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60을 넘긴 사람들이다. 모두 오픈과 함께 같이 시작해서 벌써 3년 차이다. 도중 그만둔 사람 몇 명 빼고는 처음 그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다. 모두 나이를 떠나 내 일처럼 성심성의껏 일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몫은 성실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교대 근무를 함과 동시에 앞 사람이 미뤄놓은 일까지 해야 하므로 힘은 배가 들지만, 우리끼리 잠깐의 수다로 마음을 풀고 전 타임 사람 몫까지 마음을 다한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무엇 하겠는가?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내가 다 하는 게 속 편하고 뿌듯하다.


그래서 상반기 결산 보고 회의에서도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유구무언' 한마디만을 한 것이다.

눈치 빠르고 일 잘하는 사람들은 나의 침묵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아차렸지만, 이해 능력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손에 쥐어줘도 모를 것이다. 다행히 센스있는 우리 팀장님 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시었다. 본인이 나처럼 묵묵히 더 잘하겠노라고. 그 문자 한 통으로 마음은 봄날이 되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