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란걸 좀 하자
30년 전 아들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난 오후,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시험 보러 가기 전 30분씩 15번의 연습 과정을 거쳐 도전했으나 낙방, 두 번째 도전에 면허를 획득했다. 10년간 장롱면허를 거쳐 20년 차 운전 중인 운전자이다. 운전 초창기에 한 번 뒤에서 들이 받친 것 외에는 사고는 전혀 없었다.
"나 운전면허 딸 거야"라고 말하니 작은오빠가 말하길
"여자들이 욕먹는 이유는 한 가지야. 흐름을 타고 남들 속도에 맞춰 가면 되는데 여자들이 그걸 잘 못하니까 남자들이 욕하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거야. 흐름 타는 것만 잘하면 돼."라고 조언했다.
"끼고 빠지기만 잘하면 돼. 무리하게 하지 말고 앞, 뒤차 거리를 충분히 두고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하면 아무 문제 없어."라고 큰 오빠는 조언했었다.
운전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그 조언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나 혼자 천천히 가지 않았고,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하고 막무가내로 들이밀지 않았다. 낯선 길을 갈 때는 저절로 조심성이 생기지만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20년째 운전 중이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여성 운전자가 많지 않았었다. 도로 위 대부분의 차는 남성 위주의 운전자들이었다. 2005년 기준 남성 운전면허 소지자는 약 1,474만 명,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는 약 875만 명이었다. 현재 2023년 기준으로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여성 운전자는 약 1,345만 명으로 나타나며, 여성 비율이 최근 5년간 평균 약 41%를 차지하고 있다. 2024년 8월 기준 한국 리서치 조사에서는 남성 운전자(80%)가 여성 운전자(54%)보다 여전히 많지만, 여성 운전자 수가 남성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결론적으로 2005년 약 37%였던 여성 운전자 비율이 2023~2024년 기준 41% 이상으로 증가하였고, 여성 운전자의 수가 꾸준히 늘어났으며 증가 폭도 남성보다 더 가파르다. 여성의 사회 활동 증가와 운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 위는 한산함을 잃었고 어느 시간대든지 만원사례다.
나는 보통 아침 7시에 차에 시동을 걸고 아들을 태우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준다. 자차로 가면 10분 내로 도착하는 거리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 30분은 족히 걸린다. 처음부터 그리 한 건 아니다. 회사에 취직이 되고 한 4년이 지나면서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려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러워 내가 먼저 제안하여 시작된 일이다. 역 출,입구에 다다르면 나 말고도 아들, 딸, 남편 태우고 오는 차가 한둘이 아니다. 오래 정차할 수 없으니 잠깐 차를 세우고 출근하는 이들을 내려준 후 떠나는 차들을 보면서, 변화하는 세상에 편승해 잘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오늘도 역 4번 출,입구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좌회전 하기 위해 2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진 신호가 끊기고 좌회전 신호로 바뀌었고, 신호에 따라 움직여 좌회전을 다 하기도 전에 갑자기 1차로 차가 내 차 앞으로 확 들어왔다. 식겁했다. 사고 일촉즉발의 상황. 놀라 경적을 길게 눌렀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 너무 놀랐고, 너무 화가 났다. 내려서 따지고 싶은 충동, 심지어 들이받고 싶은 분노가 순간 올라왔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참았고 운전해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화로 들끊었다.
거의 매일 운전을 한다. 별의별 꼴들을 목격한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1차로를 타고 오직 나의 길을 가련다 천천히 본인의 페이스로 운전하는 사람, 앞, 뒤 안 가리고 낄만한 자리가 아니어도 들이미는 사람, 요리조리 잘도 빠지며 달리는 사람, 뒤에서 기다리기 싫어 횡단보도 위에 와서 서는 사람, 깜빡이만 켜면 되는 양 코 앞에서 들어오는 사람,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 천태만상이 도로 위에 펼쳐진다.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고 운전을 하는 것일까'를 생각할 때가 많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좌회전을 다 한 다음에 앞, 뒤, 좌, 우를 살피고 난 후 끼어도 끼어야지 다 돌지도 않은 진행 중에 들어오면 어떻게 피하란 것인지, 나름 방어 운전에 항상 신경 쓰고 운전하니 피할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100% 박는 각이었다.
나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 운전이다. 도로 위는 공공의 공간이다. 흐름이 있고, 예의가 있고,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 룰은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고 피해는 엉뚱한 사람에게 간다. 운전은 습관이다. 자기 성격이 다 드러나는 행위다. 억지로 끼어들고, 흐름 무시하고, '나 하나쯤이야' 식의 행동은 결국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협한다. 운전은 '기술'보다 '배려'가 먼저다. 실력 좋은 운전자보다 예의를 지키는 운전자가 훨씬 안전하다.
20년 무사고였던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피했고, 누군가의 무례를 참았고, 때로는 내 우선권을 양보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고를 내지 않았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