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영화 잘 보고 왔어요?"
"그럼!"
" 난 별로던데 왜 본거예요?"
토요일 오전 시간을 비워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영화관에 가서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바쁘기도 하고 체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영화관 발걸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난 '엘리오'를 큰맘 먹고 보러 나섰다. 일 년 만이다. 지난해에도 일 년 만에 교수님의 추천하는 '인사이더 아웃'을 보고 왔었다. 매년 주재를 바꿔 16주 동안 하는 심리 수업을 듣다 보니, 어린이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깊이가 꽤 있는 영화라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주인공 엘리오는 지구에선 외톨이 같은 존재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친구도 없이 미혼인 고모와 생활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외계인에 의해 납치당하기를 희망하며 외톨이로 생활하던 중 어느 날 외계 생명체들의 의해 '지구 대표'로 우주에 소환된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납치된 엘리오는 오히려 우주에서 주목받는 존재가 된다. 지구에서 움추러들던 엘리오는 우주 생명체의 존재들에게 '지구 대표'로 주목받는다. 낯선 우주에서 엘리오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과제에 놓인다. 강요받은 대표성과 마주한 엘리오는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그 과정에서 차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워나간다.
영화는 단지 소년의 우주 모험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외계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여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내면의 여정이다. '지구 대표'라는 역할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단순히 사회적 역할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존감과 자기 수용의 문제임을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한다.
심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엘리오를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엘리오는 여러 혼란과 시험을 거치면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 시작한다. 또한 영화는 외로움, 소외감, 자기 부정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진짜 자기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년에 보았던 '인사이드 아웃'이 감정, 기억, 정체성, 심리 회복 등 내면의 움직임을 다룬 작품이었다면, 엘리오는 그러한 혼란을 우주의 무대 위에 올려놓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픽사의 작품이지만, 엘리오는 감정의 흐름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까지 질문한다. 나는 어디에 속하고, 왜 여기에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단지 나이 어린 소년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묻게 되는 질문을 상징화한 여정이다.
심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엘리오는 이론으로 배운 '자기 이해'의 개념을 감성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엘리오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외로움을 느끼고,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한다. 그 질문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엘리오처럼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준다.
디즈니 픽사의 영화는 단순히 아이들 만을 위한, 아이들이 보고 재밌어할 화려한 영화가 아닌, 어린이에게는 꿈과 모험을 어른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픽사의 캐릭터들은 단순히 귀엽거나 웃긴 게 아니라, 감정을 입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엘리오의 주인공 역시 어설프고 소심한 소년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 몸짓, 대사 하나하나에서 내면의 불안, 두려움, 외로움, 용기가 다 보인다. 픽사는 매번 관객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간다. 엘리오에서는 외계의 다채로운 문명, 기상천외한 생명체들, 우주의 독특한 규칙 등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내면 심리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세계관을 제시했다.
픽사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절대 무시하지 않지만, 어른들의 감정과 삶의 복잡성도 함께 다룬다. 아이는 우주와 외계인에 흥미를 느끼고, 어른은 엘리오의 혼란, 외로움, 성장에 감정이입을 하게 했다. 아이처럼 상상하고, 어른처럼 이해하고, 모두에게 감동을 전하는 내용을 보며 잘 보러 왔다는 생각을 했다. 애니메이션이라 해서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재미만을 생각하고 봤다면 큰 오산이다. 내용에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들의 질문만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