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나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내 밥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아내가 내 밥 차려주려고 결혼한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 삼시세끼 해 먹이는 것 보면 고맙고 미안하죠."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장면이다. 한 배우가 음식 관련 프로에 출연해 일상을 보여주며 한 말인데 그 말이 오래도록 신선하게 나에게 머물렀다.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런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 배우가 달리 보였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내 편이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배우자에게 기대가 커진다. 밥을 차려주길 바라고,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며, 나의 불편과 외로움을 채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 내가 바라는 만큼 상대가 채워주지 못하면 원망이 생기고, 그것이 쌓여 싸움이 되고 불화가 된다.
그 배우의 말은 그런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듯 들렸다. 배우자가 해주지 않는 것을 세기보다 이미 해주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고마워하겠다는 태도. 결혼 생활을 오래 지켜주는 힘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두 분은 평생을 큰 다툼 한 번 없이 사셨다.
아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알아서 척척 해 내시는 분이셨다. 어머니가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어머니의 몫까지도 어느 정도 다 해 주는 그런 남편이었다.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자면, 오일장이 서는 날 새벽이면 아버지는 밭에 나가 채소를 뽑아오시고, 어머니는 보기 좋게 손질하고 팔기 쉽게 묶어서 깔끔하게 준비하셨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그것들을 가지고 장에 가셔서 팔았고,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은 물론 어머니의 속옷 까지도 사가지고 오셨다. 추수가 끝나고 농한기가 오면 마을에서 주체하여 떠나는 봄, 가을 전국 팔도 여행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용돈까지 쥐어 주며 '마누라 조심히 다녀와'하신 분이셨다. 산 밑에 집이 있던 관계로 마실을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아랫마을로 가야 했는데, 점심을 드시고 아랫마을로 가 친구분들과 시간을 보내시다가 정확히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에 오셨다. 집에 오시면 바로 소 죽을 끊이시고 밥 지을 물을 가마솥에 끓여 어머니를 도와주셨다. 그런 일상이 평생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모두 아버지가 하셨다. 사랑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는 부분이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 늘 '묵묵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말로써 애정을 표현한 적은 없으셨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가족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믿고 존중하며 늘 곁을 지켜주셨다. 평생 잔소리 한번 없으셨고, 큰소리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두 분의 삶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말로 서로를 위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상대의 자리를 존중해 주며 사셨다. 평생을 그렇게 두 분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사셨다.
아내가 자신의 밥을 차려주려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아이들 삼시 세끼를 챙기는 아내를 보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 말이야 말로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다. 상대방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항상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마음, 서로를 위해 해주는 모든 일들에 감사하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베풀려고 노력한다면, 정말로 우리 부모님처럼 평생을 다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매일매일을 맞춰가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다툼 없이 평생을 함께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그 비결은 결국 단순한 것 같다. 기대를 줄이고, 고마움을 크게 여기며, 각자의 몫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말도, 큰 희생도 아니다. 오히려 '내 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상대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마음이다. 그 작은 마음과 태도가 모여 평생의 평화를 만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그 배우가 말했듯이 기대보다 배려로, 요구보다 감사로, 사랑을 일 순위로 올리고 지혜롭게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