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례품
결혼식이란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 중 하나다. 누구나 일률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는 첫걸음이며, 양가가 함께 어울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축제이기도 하다.
8월의 마지막 토요일, 같은 단지에 사는 10년 지기 친구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강남에 있는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었고, 시간은 정오 12시였다. 문제는 토요일 오후 편의점 알바가 있다는 점이었다. 예식에 다녀오면 체력이 약한 나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가지 않으려 했다. 전화통화로도 이야기했고 마주칠 때마다 못 간다 했지만, 그럴수록 친구가 많지 않아서 꼭 와야 한다고, 네가 안 오면 누가 오느냐며 협박 아닌 협박에 결국 동네 친구 차를 얻어 타고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고 가도 두 시간 전에는 나가야 하고, 차를 가져가도 두 시간 전에는 가야 하는 거리. 여유 있게 편하게를 외치며 나선 길이였지만 결국에는 식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난 시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까지 힘들게 가야 하나 하는 회의도 있었지만 의리와 약속을 지켰다는 홀가분함도 있긴 했다.
결혼식에 갔다 온 지 열흘쯤 지난 뒤, 뜻밖에 소포 하나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신부의 아버지, 즉 친구 남편이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정성스러운 내용의 글과 함께 포장된 말총베개가 들어 있었다.
식장에 도착해 축의금을 낼 때, 답례품을 보낼 주소를 적어달라 하여 따로 주소를 적어 주긴 했지만 이런 답례품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혼 답례품이라고 해봤자 간단한 선물세트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날의 일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지금껏 예식에 참석하고 받아 본 답례품이라 함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떡이나 우산, 수건이나 컵정도였다. 집으로 배달되는 답례품은 받아본 적이 없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것도 고가의 답례품을 받고 나니 사실 놀라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싼 물건에 놀랐다. 하지만 그 답례품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상상해 봤다. 단순히 돈의 여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첫 딸의 결혼을 준비하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얼마나 정성을 들일지, 많은 생각과 딸을 생각했을 것이다. 답례품이란 결국 '당신의 정성에 내가 보답합니다'라는 표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관계의 온도를 물건으로 전달하는 행위다.
사실 그동안 답례품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받으면 받는 대로, 안 받으면 안 받는 대로였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답례품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주는 이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척도이며, 받는 이에게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답례품은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혼례나 제례, 환갑잔치 같은 큰 의례에서는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이나 물건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내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이자,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의 표현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풍습이 결혼식 답례품, 상가의 인사품, 환갑잔치의 기념품으로 이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시대에 따라 답례품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떡 한 덩이, 사탕 한 봉지가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다. 경제가 풍요로워지면서 답례품은 점점 다양해졌고, 때로는 경쟁적으로 고급화되었다. 지금은 웨딩홀에서 하객수의 맞춰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친구의 경우처럼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답례란 무엇일까? 한자로 答禮는 예에 답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정성, 배려, 선물에 예를 다해 응답하는 행위, 즉 관계를 이어가는 윤활유와 같다. 답례는 반듯이 물건일 필요는 없다. 따뜻한 말 한마디, 고마움을 담은 눈빛, 짧은 안부 전화 한 통도 훌륭한 답례가 된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삶은 주고받음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정성을 받을 때, 우리는 답례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성을 건넨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관계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