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역시 라이브

by 여행강타

이웃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어 늦은 점심 이후 버스를 타고 갔다.(주차공간이 부족한 관계로)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나와 인근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병원 갈 때마다 늘 있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장을 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크고 제대로 된 재래시장이 없기 때문에 가끔 일부러 장을 보러 가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반찬도 사고, 약간의 과일도 사고, 야채도 조금 사서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나오는데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시끄러운 게 싫은 나는 '시장이 왜 이리 시끄러워'하며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소리의 출처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시장 어울림 한마당'이란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 아래 작은 무대에서 한 여성이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검은색 짧은 원피스에 긴 부츠를 신은 그녀는 신들린 것처럼 클래식이면 클래식, 트로트면 트로트, 발라드, 댄스, 심지어 민요 아리랑까지 30여분 연주를 했다. 전통 시장이라는 배경과 현대적인 전자 바이올린의 조합이 묘하게 흥을 돋우며 어울렸다.


나는 완전히 음악에 빠져들었다. 전자 바이올린 특유의 깊고 풍부한 소리에 흥이 올라왔고, 한곡 한곡 끝날 때마다 손바닥이 벌겋게 박수를 보냈다. 연주자 또한 단순히 악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춤도 춰 가면서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 열정적으로 연주하니 발길을 멈춰 선 관객들도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고, 어깨를 들석이고, 연주가 절정에 이르면 박수로 환호하는 나의 이런 모습이 얼마만인지. 언제 마지막으로 음악에 이렇게 몸과 마음을 맡긴 적이 있었을까? 기억도 가물거렸다.


한참을 서서 연주를 감상하면서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15년 전만 해도 퇴근 후 대학로 까지 가서 연극을 보고, 서울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사는 도시에 가수의 콘서트가 있으면 찾아가 즐기는 열정이 넘쳤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과 담을 쌓고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번 주는 바빠서', '다음 달에는 꼭'이라는 핑계를 댓지만, 어느새 그런 핑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것,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모험보다는 안전을,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택하게 되었다. 또한 체력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엔 주말에 서울까지 가서 공연 보고, 친구들과 수다하느라 늦은 저녁에 돌아와도 월요일 출근길에 무리가 없었다면, 이제는 조금만 무리해도 피로가 며칠씩 간다. 그러니 이젠 공연은 둘째치고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도 미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우연한 공연,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주는 직접적인 즐거움,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그 특별한 에너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TV나 YouTube로 듣는 음악과, 라이브 공연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연주자의 움직임, 현을 켜는 소리, 심지어 실수까지도 모두 그 순간만의 특별한 경험이 된다. 녹음된 음악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다. 특히 이번 같은 야외 공연은 더욱 그렇다. 시장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이 음악으로 인해 완전 다른 곳으로 변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을 시장 한편이 콘서트 홀이 되었고,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관객이 되었다. 이런 예기치 못한 만남이야말로 라이브 공연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는 어쩌다가라도 한 번씩은 공연도 가고 연극도 봐야겠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것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라이브가 주는 감동과 에너지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기에 더욱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체력 저하, 나이 타령을 하며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젊었을 때와 같을 순 없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생각해 보고, 열정과 감성을 깨워 집에서 가까운 작은 공연부터 알아봐야겠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