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하는 내 몸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왜 팔이 저리고 아파 밤이면 수차례 깨어 수면에 방해를 하는지...
10년 전, 오른쪽 어깨에 오십견이 왔을 때도 그랬다. 팔은 마음대로 들리지 않았고, 통증은 얄궂게 밤마다 찾아왔다. 통증클리닉에서 찍은 엑스레이에는 석회가 뚜렷했고, 선생님은 단정하듯 말했다.
"오십견입니다."
진단을 받고 무려 7년을 아팠다.
잠결에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팔이 저려 하룻밤에도 깨기를 여러 차례.
코로나 때 체육관에 다니며 PT를 받는 과정에서 강제 고강도 운동을 하며 나도 모르게 통증이 사라졌다. 억지로 몸을 쓰자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린 듯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다시 오른쪽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일상에는 지장이 없지만, 기분이 나뿐 통증이었다. 예전처럼 밤에 누워 오른쪽으로 돌아 누우면 팔이 저렸다. 주먹만 한 돌덩이 하나가 매달려있듯 불편했다.
집 근처 병월엘 갔다.
엑스레이만 열댓 장 찍었다.
사진을 보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거북목에 목디스크도 있네요. 그런데 지금의 팔 저림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고 어깨에 염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허걱~ 거북목에 목디스크까지. 게다가 염증이라니.
무리하게 팔을 쓴 적도 없고, 거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토록 자꾸 아프고 말썽을 부리는 걸까.
시간이 흘러서?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슬프게도 할 말은 없지만.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나의 생활 습관 또한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몸은 참 부지런하다. 겉보기에도 부지런 하지만, 속에서도 늘 무언가를 지키고 수리하고 조율하며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내가 무심히 넘긴 피로, 잠시만 버티자며 무겁게 들었던 짐들, 고개 숙여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던 스마트폰까지, 지금껏 지켜주던 몸은 한계를 넘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몸의 통증은 축적의 산물이다.
조금씩 쌓인 잘못된 자세, 늘어진 근육, 굳어진 관절들이 어느 순간 목을 잡아당기고, 어깨를 조여 오고, 팔에까지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제는 좀 돌보라고.
어제는 저기, 오늘은 여기 통증은 돌아가며 신호를 보내고 몸은 병듦을 이야기한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억울하기도 했다. 나름 노력해도 나아지지는 않고 제멋대로 신호를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꾸 생겨나는 통증은 몸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우리는 종종 관리라는 말을 한다. '건강한 몸을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몸 관리를 한다'라고 한다.
과연 건강한 자신의 몸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을까?
젊어서 건강했을 때는 몰랐다. 그 건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냥 걱정 없는 나날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면서 돌아보게 되었고, 신경 쓰게 되었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 이 시점, 통증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지금,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고 뒤돌아 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가까이 오래 지내기 위해선, 그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해야 하듯이, 내 몸도 그래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면 좋아하는지, 무엇을 오래 하면 힘들어하는지 살펴야 한다. 예전에는 하루쯤 무리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오늘의 무리가 내일의 통증으로 영수증처럼 나에게 도착한다.
이제는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무시하지 않고, 억지로 버티지 않고, 무조건 탓하지도 않으려 한다.
몸이 보내오는 작은 불편에도 '그래 알겠어'라고 답하며 조금 더 부드럽게 다뤄보려 한다.
이번 팔 저림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뿐 일만은 아니었다.
통증 때문에 갔고, 그래서 나의 목 상태를 알게 되었고, 어깨 근육에 염증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통증은 불청객이지만, 때로는 필요한 손님이기도 하다. 문을 가칠게 두드려도, 그 안에 있는 위험을 알려주려고 온 것이라면 무조건 내쫓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나의 몸이 여전히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 오십견 때처럼, 꾸준히 관리하고 조금의 시간을 들이면 통증은 줄어든다. 회복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른다. 몸이 느리고 고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회복하려 애쓴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묘하게 감동적이다.
나는 이제 거북목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듣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오래 볼 때면 턱을 살짝 뒤로 당겨보고, 앉아 있을 때는 어깨를 내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마치 내 몸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처럼.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겼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 번 더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한 번 더 걸어 나가 바람을 쐬고,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몸을 다시 나에게 맞춰주는 것 같다. 몸은 내가 보내는 정성을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알아듣는다.
돌아보면, 나의 몸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변화를 감지하고 경고음을 울렸다. 나는 그 신호를 종종 무시했고 때로는 억울해했고, 가끔은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아프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열심히 써온 몸의 흔적이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이 통증은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으며 관리를 잘하면 사라질 것이다. 나의 일상은 편안해질 것이고, 몸은 또 조용히 나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