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화 (강기희)
지난 금요일, 떠나기 아쉬워 발길을 주저하는 가을 끝자락 무작정 집을 나섰다.
차는 달리고 달려 정선의 오지 마을에 나를 내려놓았다.
TV 프로그램 촬영지도 걸어보고, 물이 마른 계곡 자갈천을 아슬아슬 건너기도 하고, 종내는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던 정선 오지 덕산기 계곡에 자리한 숲속책방까지 가게 되었다. 책방 앞 도깨비 소 앞 돌탑이 반겨주고, 강아지 두 마리가 반겨줄 뿐 첩첩산중 경치 외엔 아무것도 없다. 책방 주인은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며 차 한잔 할 것을 권했다. 시간이 늦은 오후로 흘러서일까, 집이 바람골에 위치해서일까 등허리가 시림에 녹차 한잔에 몸을 데우며 둘러볼 것도 없는 작은 책방에서 책 두 권을 골랐다. 책방의 주인이었던 강기희 작가의 책과 영국 작가 '아잔 브라흐마'의 책이다. 지금의 책방 주인이 사인을 해주며
"강기희 작가는 제 남편이에요. 지금은 제가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했다.
"아 네~~. 한 권 더 사고 싶은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으로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글세요~~ 천천히 더 둘러보세요~"
이것저것 읽어보던 중 '겨울 동화'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중앙 도서관에서 손주들을 위한 동화 쓰기 프로그램에 8명이 참여해 동화를 썼고 '가을 동화'라는 제목으로 책이 한 권 완성되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보는 순간 저절로 손이 갔고 모두 세 권을 결제했다.
"마음 따뜻해지는 책을 원하시더니 그 책을 고르셨네요."
"그 책은 남편의 유작이에요."
'겨울 동화'는 그 깊은 오지에서 '숲속책방'을 운영하며 문학 활동을 해온 소설가 강기희(1964~2023)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이다. 이 책은 단순한 유작이 아닌 암 투병 중이던 작가가 사랑하는 아내 유진아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던 마지막 이야기이자,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는 출판사에 초고를 보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생전에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아내와 함께 만들어 보고 싶었던 동화인데 알다시피 내 몸뚱이가 앞일이 불투명해서 거칠지만 초고 그대로 보내네."
퇴고를 못하고 떠날 수도 있다는 예감 속에서도 끝까지 써 내려간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값진 의미를 가졌다 할 수 있다.
겨울 동화는 작가 자신이 "눈으로 가득한 겨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대로, 춥지만 따스함이 기대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살았던 도깨비 소의 기억, 아내와 함께 매년 만들었던 눈고양이, 그리고 정선 덕산기 계곡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작가가 "아이들 동화가 아닌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른 동화가 되었다"라고 고백한 말처럼 이 동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해진 이별 앞에 떠날 수밖에 없는 작가 자신의 마음이 오죽했을지, 동화 속 죽어가는 눈고양이를 살려내는 장면에서 작가의 절실함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겨울은 춥지만 결국 봄을 예고하듯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사랑의 온기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동화는 차갑고 어두운 겨울밤에도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살았던 곳,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장소. 지형지물을 눈에 담아 알고 있는 장소에서의 이야기. 늦은 밤까지 읽어 내려가는 동안 화면 위 영상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동화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