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기억
죄책감이란 저지른 잘못이나 죄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를 꾸짖는 마음을 말한다.
내가 한 행동을 떠올릴 때마다 이 단어가 마음에 걸리고, 가슴 한편이 편치 않다.
수년 전 TV 화면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는다.
겨울 옷을 만들기 위해 오리 농장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오리 한 마리씩 가랑이 사이에 끼워 꼼짝달싹 못 하게 붙잡고는 가슴과 목에서 털을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뽑아내는 모습이었다. 오리들은 극심한 고통에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지만, 매정한 인간의 손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더니, 인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그 잔혹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어떻게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동물 애호가도, 동물단체 회원도 아니다. 그럼에도 저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나만큼은 오리털이나 거위털로 만든 옷은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내 뜻대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50이란 나이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추위를 타기 시작했고 4~5년 전부터는 증상이 점점 심해져 갔다.
아침 이불 속에서 나오는 순간 재채기 수십 번은 기본이고, 줄줄 흐르는 콧물 때문에 결국 처방약을 털어 넣게 된다.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감싸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 겨울이면 솜바지에 패딩 점퍼를 입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보호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 작은 체구 하나를 위해 난방 온도를 높이는 건 왠지 옳지 않다는 생각에 옷을 여러 겹 껴입기 시작했다.
문제는 몸집이 작다 보니 옷을 겹겹이 입으면 생활이 몹시 불편하다는 것이다. 결국 얇고 따뜻한 옷을 찾다 보니 어느 순간 오리털 패딩 바지와 거위털 재킷을 사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부피가 작고, 가볍고 따뜻하니 생활이 편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올겨울을 대비해 바지 두 개와 재킷 하나를 샀다. 옷을 사 나오는 순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그 화면 속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추위를 못 견디게 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해 이리된 걸까.'를 생각하며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털을 뽑히며 고통스러워하던 오리들의 모습과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겹치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현실적인 필요와, 텔레비전 속 장면에서 느낀 연민과 죄책감이 옷을 구매할 때마다 교차한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못마땅함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만 고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오리, 거위털 제품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더라도, 동물복지 인증 제품을 우선으로 살피고, 합성 충전재로 만든 보온 제품을 찾아보려 한다. 가능한 한 품질 좋은 제품을 골라 오래 입고, 새 옷을 사기보다는 수선하거나 재활용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생각이다. 큰 것이 아닌 작은 것부터 실천해가다 보면 죄책감과 현실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완전한 해답은 없겠지만, 감정에 눌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실천 가능한 작은 변화를 택해보려 한다.
가끔은 텔레비전 속 그 오리들이 떠오르겠지만, 그 기억이 나를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끄는 자극이 되길 바란다. 죄책감은 단지 불편한 감정만은 아니다. 그것은 변화의 씨앗이며,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