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봉사

다시 나를 돌아 본 날

by 여행강타

탁탁 타다닥 탁탁.

쉴 사이 없이 두 대의 기계에서 연신 팝콘이 튀겨져 나온다.

그런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토요일, '제1회 청계동 주민자치 어울린 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내가 소속된 '미소 나눔' 봉사단체로 팝콘 봉사 의뢰가 들어왔고, 대표님을 비롯한 회원 6명이 봉사를 하러 갔다. 총무 '아미'(실명임)가 "언니, 9시 30분부터 준비할 거예요"라고 했는데, 주말이면 늦잠 자는 습관 때문인지 그날 아침 나는 늦잠을 자버렸다. 분명 알람을 맞추고 잤건만, 울리는 소리를 끄고 깜빡 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8시가 지나 있었다.

아차 싶었다. 대충 매무새를 다듬고 택시를 호출했다. 차를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행사로 인해 주차할 자리가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택시가 빨리 와 주었고, 행사 시작 시간인 10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팝콘 기계와 부자재(옥수수, 식용유, 소금, 봉투, 단체 앞치마 등)를 사무실에서 행사장까지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회원들은 이미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놓고 기계를 가동 중이었다. 늦은 나는 많이 미안했다.

팝콘을 담아 줄 봉투까지 벌써 접어 준비해 놓았다. 다른 단체들이 펼쳐 놓은 장마당을 둘러볼 사이도 없이 나는 서둘러 합류해 손을 보탰다. 한 사람은 재료를 준비하고, 두 사람은 팝콘을 튀겨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접혀 있는 봉투를 담기 편하게 잘 벌려 놓았다. 나는 담긴 팝콘을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계속 서서

"맛있게 드세요" 하고,

"이거 돈 내는 거예요?"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니에요, 그냥 나눠 드리는 거예요" 말하는 것도 에너지를 소모해 힘든 일이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추워지는 상황에서 밖에 서 있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시간 밖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나름 두꺼운 기모 청바지에 목티, 스웨터, 조끼까지 입고 갔으나,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바람길에 자리 잡은 우리는 부는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뜨거운 커피와 어묵 국물을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옆 군고구마 코너에서 건네주는 뜨겁고 달콤한 고구마도 우리의 추위를 달래는데 한몫했다. 줄 서 계시던 어떤 어르신은 춥겠다며 자기 가방에서 스카프 한 장을 꺼내시더니 내 목에 둘러주셨다. 안 그러셔도 된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안 돌려줘도 된다면서 좋은 일 하는 데 보탤 것은 없고 스카프라도 하라 하셨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래, 세상은 이래서 살 만한 거지'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팝콘을 받으려 줄 서 있던 누군가 모금함에 천 원 한 장 넣는 것을 보더니, "돈 내는 거네."라며 바로 발길을 돌린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미소 나눔'에서 하는 일은 주로 매주 화요일 청계 복지관에서 밥 배식 봉사다. 한 달에 한 번 차상위 계층 가정을 찾아가 '집 고치기'란 이름으로 도배, 장판, 전기, 싱크대 등을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 각 동, 지자체에서 팝콘 봉사 의뢰가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간다. 이 모든 것이 회원들의 회비와 봉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2022년 8월 첫 주 화요일 밥 배식 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화요일 오전은 시간을 비워 두고 꼭 가는 편이다. 봉사란 시간이 남아돌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받고 사는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정지우 작가는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가치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나이 들어서도 예쁨을 유지하는 일에, 누군가는 매주 교회를 찾아가는 습관에, 누군가는 품위 있는 소비생활을 유지하는 일에 삶을 의지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으면서, 그 가치에 기대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는 관념에 기대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는 '나는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생각에 기대고 싶어 한다."라고도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봉사'라는 가치에 기대어 있고, 내가 믿는 것들에 의지하고 있다고.

그날 추운 바람 속에서 팝콘을 나눠주며, 나는 또 한 번 확인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것,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실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무언가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그것이 선한 일이라는 것.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봉사는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복지관에서 밥을 배식하며 만나는 어르신들의 "고맙습니다"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집고치기를 마친 후 환해진 표정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하시는 분들을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날 팝콘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 역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니까, 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지켜주는 일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고,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질수록, 이런 작은 실천들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화요일마다 복지관에 가는 것이 때론 귀찮을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가서 일을 시작하면, 그 귀찮음은 금세 사라진다. 회원들과 함께 일하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과의 짧은 인사, 그런 것들이 모여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든다.

그날 팝콘 봉사도 그랬다. 추위에 떨며, 계속 서서 나눔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느낀 작은 행복들이 있었다. 함께 온 회원들과 나누는 눈빛, "고맙습니다" 하고 가는 사람들의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어르신이 건네주신 따뜻한 스카프. 그것들이 모여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들은 거창한 성취를 이룬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하고, 작은 것을 나누고, 서로에게 기대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어르신이 내게 스카프를 건네주셨듯이, 내가 누군가에게 팝콘을 건네주었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따뜻함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작은 나눔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봉사를 한다고 말하면 가끔 "시간이 많아서 좋겠다"거나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를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시간이, 역설적이게도 내 삶에 진짜 여유를 가져다준다.

'미소 나눔'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미소를 나눈다. 하지만 동시에 미소를 받는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어르신이 주신 스카프를 벗으면서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작은 것들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누군가를 기대게 하면서.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내가 의지하고 싶은 가치다.

세상은 때때로 차갑고 각박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따뜻함은 존재한다. 팝콘 한 봉지를 건네는 손, 스카프를 둘러주는 손, 그런 작은 손길들이 모여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따뜻함의 일부가 되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진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