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

몇 명 있으세요?

by 여행강타

월요일, 오전에 한 통, 오후에 한 통,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온 전화는 글쓰기 반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친구다.

사람 사귀는 걸 잘 못하는 나는 근 일 년여간 만날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만 할 뿐 다가가지를 못했다.

반면 사근사근한 성격에 웃음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작은 간식 하나라도 나눠주며 먼저 말 걸어 주고 나에게 다가왔다.

올여름 나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그녀에게 브런치 앱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고, 그 계기로 인해 친해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장점과 단점을 말해주기 시작했고 서로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조금씩 발전 중이다. 그런 그녀가 전화한 것이다.

"나 동화 응모한 것 당선됐어! 기대도 안 했고, 연락이 없어 떨어진 줄 알았는데 방금 문자 왔어. 제일 먼저 전화한 거야!"

"어머어머, 와우~ 축하한다~."

너무 기쁘고 좋은데, 정말 멋진 말로 축하해 주고 싶은데, 정작 입에서는 평범한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소위 글 쓰는 사람이라는 내가 이런 순간에 표현력이 부족하다니. 하지만 진심만큼은 전해졌기를 바랐다.


집안일을 얼추 끝내고, 생각지 않게 생긴 오후에 틈을 어떻게 채울까 고심하다가 머릿속 저 어딘가 저장해 놓았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와우정사' 용인에 있는 사찰로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곳. 평소 같았으면 덜렁 차키 하나 들고 혼자 갔을 곳인데 아침에 전화 준 친구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오후에 시간 되면 나랑 놀래?' 카톡을 보냈다.

'그래, 나 병원 갔다가 방금 들어왔어. 점심 먹고 만나자.' 바로 답장이 왔다.

내 제안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응해주었다. (오후에 일정이 있었음에도)

차로 이동하는 시간과 절을 둘러보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그녀 또한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나 보다.

그녀가 먼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 수업이 끝나더라도 가끔 만나 차 마시자'라고 제안했다. 나도 좋다고 말해줬다.

특별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고, 다음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는 건 '찐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용인에서 돌아와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해 식탁을 차려 막 한 수저 입에 넣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30년 지기 친구다.

"저녁 먹었어?"

"지금 먹고 있어!"

아~~ 한숨 소리가 수화기를 통과해 내 가슴으로 전해져 내려앉았다.

"왜?"

"오늘 속상한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는데 어디 전화할 때도 없고 말할 때도 없네~~."

"알았어. 너랑 저녁 먹을게."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고 친구를 만났다.

우린 어느 2층 식당에서 불고기 2인분을 시켜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8층으로 자리를 옮겨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놓고 또 말없이 시간을 흘렸다.

나는 '무슨 일인데? 뭔 일 있었어?' 물어보지 않았다.

친구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상 거리도 되지 못할 이야기 몇 마디를 주고 받았을 뿐,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으로, 가슴으로 위로와 위안을 주고받았다.

늦은 저녁이 되면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친구는 다음 날 아침 7시에 있을 일정을 걱정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나는 얇은 구스 패딩을 입고 나갔었다. 친구가 추위를 타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옷을 벗어 건네주었다. 친구는 최근 불어난 몸무게로 맞는 옷이 없어 요즘 날씨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걱정하던 참이었다. 일 년 전 당뇨 전 단계 진단을 받고 몸 관리를 해온 나는 체중이 많이 줄어 있었고, 내가 입고 나간 패딩이 친구의 체형에 딱 맞았다. 아니, 오히려 친구에게 더 어울렸다

"나 줘도 돼?"

"그래, 요즘 날씨에 입고 외출하기 좋으니 춥게 다니지 말고~." 건네준 나도 마음이 흡족했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심지어 우연히 같은 취미를 가진 모임에서도. 하지만 그중 '진짜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진짜 친구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생기는 관계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깊은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짧게 만났더라도 마음에 닿는 사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설명하지 않아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진짜 친구라 부른다.


진짜 친구는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감정이 헝클어진 목소리로, 속상한 마음을 쏟아내도 괜찮다. 상대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니까.

진짜 친구는 내 기쁨에 함께 웃고, 내 슬픔에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친구 사이에 늘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연락이 뜸해도 마음의 거리만은 변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통화해도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억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진심으로 엮인 관계는 시간의 틈새를 이겨내고, 서로의 삶을 존중할 줄 안다.


친구 관계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아무리 친해도 상대의 마음을 함부로 다루면 균열이 생긴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배려가 필요하다. 더 조심스럽고, 더 따뜻하게 대해야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오래 알아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주하기에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 진심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월요일 하루에도 빛을 발한다.

친구란, 인생의 짐을 함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짐을 들 힘이 다시 생기게 해주는 사람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