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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강타 May 15. 2024

그 여자 그녀 이야기

남편은 장기 출장 중


그녀는 구정 연휴가 지난 직후 아파트 평수를 줄여 이사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부동산 들락거리기, 이삿짐 업체 알아보기, 인테리어, 청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고 몸무게가 줄어들 만큼 힘들었다. 모두 처음 겪는 일들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세상 자상하고 집안일에도 그녀의 부탁이 있기 전에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힘든 집안일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런 그녀가 이사란 큰 일을 겪으면서 살이 빠질 만금 힘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부재중이다. 장기 출장 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집을 비울 거라서 그녀는 과감히 집을 줄여 이사를 한 것이다. 아들과 단 둘이 지내려니 할 일도 별로 없고 이젠 청소하기도 싫고.


남편이 부재중이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아서 해주던 사람이 없으니 처음에는 멘붕이 왔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먼저 생각 난 사람은 관리소 직원이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교체가 되었는지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와서는 해줄 일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가버렸다. 다음으로 부른 사람은 인근에 살고 있는 그녀의 큰 오빠였다. 오빠 역시 작은 키에 나이가 있다 보니 전등하나 교체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나니 다시 부를 수가 없었다.


고민이 생겨났다. 어떡하지? 소소하게 생겨나는 집안일에 번번이 전문가를 찾아 부르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녀는 생각 끝에 스스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지 뭐! 남편이 하는 것을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닌 삼십 년 넘게 보아 왔는데 못 할게 뭐가 있겠어'하고는 살망살망 천천히 하나하나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사 전에 살고 있던 집이 너무 지저분하니 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누렇게 변하는 벽지와 칠이 벗겨지는 베란다 천장은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전문가를 불러 페인트칠하려니 가격이 이만저만 비싼 게 아니었다. 도배는 그녀 혼자 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고민하다 베란다 천장을 손수 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먼저 유튜브를 시청하고 페인트 가게로 달려가 페인트는 물론 롤러, 붓, 테이프, 각종 부재료를 사 와서는 유튜브로 배운 대로 칠하기 시작했다. 작은 키에 하려니 생각보다 힘들고 몸이 아파졌다. 하지만 뿌듯했다. 하다 보니 욕심도 생겨났다. 그래서 앞 베란다, 뒤 베란다, 세탁실 천장까지 모두 해치워버렸다. 성공하고 나니 자신감이 장난 아니게 생겨났고 뭐든 다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문고리를 주문해 모두 교체했다. 창문도 모두 떼어내어 창틀과 창을 흰색으로 깨끗하게 칠하고 나니 한결 환해졌다. 집은 바로 전세를 놓을 수 있었고 이사도 할 수 있었다.


이사 한 집 거실등이 계속 눈에 거슬리는 중이었다. 분명 집수리 전에는 멀쩡했었는데 그래서 집안 곳곳에 모든 전등을 마음에 드는 것으로 주문해 교체했으나 거실 등만은 그대로 둔 것이었는데 집수리가 모두 끝나고 금액을 정산한 후에야 알았다. 등 갓이 깨져서 투명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을. 생활에 불편하지 않으니 두 달을 참아 봤지만 볼 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이번에는 전등 갈기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마음에 드는 등을 고르고 골라 주문했고 배달 즉시 전원을 차단 후 시행착오를 하며 전등 교체도 완료했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다 보니 웬만한 가구들을 처분하고 왔더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DIY (Do It Yourself) 가구를 주문하고 설명서를 보면서 (봐도 모를 땐 한 탬포 쉬며 찬찬히 살피며 요리조리 궁리하며) 조립을 하여 큰방 작은방 베란다에 까지 깔끔한 정리로 마무리를 지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읆는다'더니 어깨너머로 본 것이 이리도 도움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녀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오기도 한몫했지만 남편의 자상함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생각해 보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감도 그녀 남편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하나 둘 생겨나는 소소한 집안일을 마냥 남편을 기다리며 방치하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며 의욕 넘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이가 들어가도 위축되지 않고 뿌듯함으로 해 내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감사함에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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