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여자의 사생활

생일과 가족

by 여행강타

생일을 언제부터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일상이 되었다. 성인이 된 아들이 자신의 생일을 잊었다며 섭섭함을 이야기할 때도 있었고 어느 해 인가 숙직을 하던 남편이 밤늦게 전화해서는 "오늘 유난히 달이 둥글고 밝네"(15일 보름이라 달이 제일 밝은 날 생일이다.)라며 자신의 생일임을 알리는 메시지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일도 있었다. 그 여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다 보니 식구들도 어느 순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생일에 대한 개념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번 주 시간 되는 요일은 언제이며 시간을 비울 수 있는 요일은 언제인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월요일만 빼고는 다 일정이 있는지라 먼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목요일이나 금요일 월차를 내려하니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먹는 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라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모처럼의 제의라 거절하지 못하고 금요일 점심으로 약속을 잡았다. 서로가 외식하러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일 년에 한두 번 나가는 것 말고 주로 주말에 집에서 서로 좋아하는 걸로 배달해 먹는데 아들이 월차까지 낸다기에 내색은 못하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이튼 날 수요일 저녁 퇴근길에 아들 손에 들려있는 케이크를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다음 날 목요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월차를 내고 저녁 외출을 싫어하는 그녀를 위해 점심을 먹자고 한 것이라는 것을. 생일을 챙기지는 않아도 잊지는 않으려고 안방 큰 달력과 그녀 책상 위 매일 보는 탁상 달력에도 표시를 해 놓았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이 조금씩 안 좋아지면서 생일에도 케이크를 먹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했기에 생일을 잊고 산지가 한참이었다.


금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 아들을 태우고 판교에 있는 '몽중헌' 중식당으로 향했다. 12시 30분 예약 시간을 맞추려 좀 이르다 싶게 출발했음에도, 넓디넓은 주차장에 주차 자리를 못 찾아 겨우 예약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아들은 두어 번 와 본 경험과 리뷰를 참고했다며 능숙하게 그녀의 식성을 고려해 딤섬 조금, 유린기, 동파육, 팔진탕면을 주문했다.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먼저 아들에게 너의 생일이 담주 월요일이니 서로 사주는 걸로 해서 반반씩 식사비를 계산하자고 말했다. 그녀의 생일은 음력이고 아들의 생일은 양력으로 하는데 차이가 일주일 남짓으로 서로의 묵인하에 넘어가던 생일을 올해는 아들이 먼저 월차까지 쓰며 그녀를 챙김에 그녀는 새삼 또 한 번 자식의 필요성, 가족의 중요성을 느끼는 날이었다.


남편의 장기 부재인 현시점에, 이러한 아들의 챙김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잊고 사는 생일 일지언정 뒤늦게라도 섭섭하고, 외롭고, 조금은 슬펐을 것이다. 딸이 없어 딸이 있는 게 어떤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주위에 딸 가진 지인들 이야기를 듣자면 이름 붙여진 날엔 크고 작은 선물은 물론 여행도 함께해 부러움의 대상인데, 살갑지 않은 아들이라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지. 소소한 딸과의 행복은 없지만, 듬직한 아들이 있으므로 의지가 되고 서로의 울타리를 자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해야 할 일인지. 흐르는 시간 속에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식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사는 것은 축복 속에서도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은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이며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첫 번째 사회이다. 가정에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채우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사람으로서의 정체상을 형성한다. 서로가 가장 큰 위로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어려운 상황에서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하나부터 백까지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는 끈끈한 결속력 속에서 수십 년 생활한 가족이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챙김과 보살핌은 의무와도 무관하지 않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금은 모든 게 쉬운 게 아닌 것이 되었다. 나를 조금 더 내려놓고 먼저 챙김으로써 가족을 소중함으로 오래오래 지키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