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귀찮은 요즘
겨울이 지나가는 시기.
겨우내 움츠려있던 것들이 다가오는 봄을 위해 분주히 뭔가를 준비하고 있을 지금.
그녀는 요즘 만사가 귀찮다. 일 년 전 브런치로부터 작가로 등록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후부터 글을 올리기 시작하며 스스로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지치지 말고 게으름도 피우지 말고 일주일에 한 편씩만 올리자'라는 약속. 글이란 모름지기 짦든, 길든, 좋은 글이든, 좋지 않은 글이든 매일 써야 습관도 생기고 실력도 느는 것이라고 이구동성 말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초보자로서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할까 봐 조금의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만 빼먹지 말고 올려보자 란 다짐 아닌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글쓰기에 입문한 초보자로서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딱히 어딘가에 적을 두고 배울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평생 학습센터에 글쓰기 교실이 있었지만 그녀가 수강 신청을 하고 4개월 만에 선생님이 바뀌면서 이상한 기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강생들은 주로 60대이며 50대는 몇 명 안 되는 인원이었는데 새로 온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비해 젊은 40대 초반의 분으로 말하는 것이 거침이 없었고 자신의 감정을 순화는 했지만 수강생들에게 전달되는 말들은 수강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강생들은 하나, 둘, 셋 떠나가기 시작했고 떠나는 대열 중에 그녀 역시 한 사람이었다. 한 학기 만에 그 수업은 폐강되었다.
그녀는 오로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구독해 읽으며 배우고자 노력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는 웃음도 있고, 사랑도 있고, 미련, 미움, 그리움 등등 모든 것이 녹아있었다. 글들을 읽으며 경험해 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않음으로써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자 매주 글을 올리며 일 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본인에게 쓰담쓰담 잘했다고 칭찬하며 꾸준함을 잃지 말자 다짐도 했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꾸준히 읽고 글을 올리면서도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심에 평생 학습센터에 글쓰기 교실을 신설해 달라고 꾸준히 건의를 했었는데 그녀의 간절함을 알았을까 드디어 올해 초 글쓰기 교실이 신설되었다. 그녀는 당연히 등록을 했고 새로 오신 교수님과도 첫 대면도 했다. 교수님은 40대 후반에 아담한 키를 가지셨고 웃는 상에 동글한 얼굴이며 열정이 많으신 분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던 한 달간의 수업에서 열정 많은 교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많은 양의 지식을 빠른 말과 함께 쏟아내셨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그녀로서는 다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졸립고 피곤했다. 따분하고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난주 수업에서 교수님이 달라지셨다.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중간중간 우스개 소리도 하시니 수업 분위기가 확 살아났고, 수업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두 시간 수업이 금세 지나갔다. 그녀를 포함 수강생들 모두가 오늘 수업 너무 좋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니, 교수님은 젊은 학생들만 가르쳐봐서 진도와 말하는 것이 빨랐다고 앞으로는 속도 조절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전 날부터 갈까 말까를 고민하며 가던 수업이 이제는 '만사제처 두고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요즘 그녀의 심리 상태, 몸 상태이다. 10 미터 아래 밑바닥 동굴에 있는 느낌이다. 지난주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도 올리지 못했다. 매일매일 있는 다른 수업들도 중간중간 빠지거나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손 놓은 상태이다. 머리로는 안다. 생각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평소 잘 켜지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떠들어 대는 소음 속에 그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늘어져 잠 속에 묻혀 시간을 흘린다. 빼놓지 말아야 하는 운동도 일주일을 쉬었다.
이유를 모르겠다. 봄이 오고 있어서일까?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라 아직은 느끼지 못하는 바람의 강도, 햇살의 온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 인해서일까? (봄은 기온 변화가 심한 시기이다. 계절 변화에 민김한 사람들은 '봄철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계절성 우울증이 나타닐 수 있는데, 이는 기온이 불안정한 날씨가 영향을 미처 기분과 에너지 수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난 일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에너지 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쏟아내 방전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한 살 더 먹었다고 나타나는 증상일까? 지난해는 유독 바쁜 한 해 이긴 했지만 나름 얻은 것도 많은 해였는데 이리도 몸이 힘드니 올해는 어찌 생활 패턴을 짜야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