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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사생활

여행 친구의 호출

by 여행강타

그 여자에겐 여행할 때만 만나는 여행 친구가 있다. 그녀는 그 여자 보다 2살 연하이며 경기도 양평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 역시 그 여자처럼 수다스럽지 않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좀처럼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며, 전공을 살려 직장일도 열심히 하는 여성이다.


그 여자는 그녀를 8년 전 발칸 여행길에서 만났다. 여행하는 보름 동안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아주 조금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발칸 여행 이후 가끔 그 여자에게 여행을 같이 가기를 희망했다. 그 여자 역시 첫 만남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녀가 원할 때마다 함께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여행이 거듭될수록 그 여자는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에 편안함을 느꼈고 그녀가 원할 때면 되도록 함께하려 했다.


지난해 그 여자는 컴퓨터 ITQ 자격증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그녀는 일과 아픈 부모님을 돌보느라 여행을 할 수 없어 한 번도 만나지를 못했고, 여행도 함께 할 수 없었다. 여행이 아니면 서로 볼일 없는 너무 프리한 사이라 연락도 하지 않고 안부도 묻지 않는 시간을 제법 길게 가졌다.


그런 그녀에게서 2월 중순 연락이 왔다. 여행 상품 설명이 담겨있는 사진 한 장과 함께. 한 달 후, 3월 중순에 출발하는, 베트남 다낭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녀가 원하고 한동안 여행길에서 만나지 못했으니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고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녀는 수시로 여행사에서 보내오는 DM을 그 여자에게 전달했고 두 사람은 지난주 화요일 인천공항에서 1년 10개월 만에 만났다. 서로 잘 지냈냐는 인사도 없이 키오스에서 비행기 티켓팅을 했고 셀프로 짐을 부친 후 그녀가 사 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며 비행시간을 기다렸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면 뭐 저런 사이가 다 있나 하겠지만 그 여자와 그녀 두 사람은 아주 편한, 호들갑스러운 인사가 없어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관계인 것이다. 꼬치꼬치 물어보지 않아서 좋은 사이, 아무것도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아서 편한 마음, 여행길에서 발걸음을 맞출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간격.


그 여자는 패키지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짜인 순서에 의해 여유 시간도 없이 차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뺑뺑이 돌듯 하는, 여행이 아닌 구경, 가고 싶지 않은 쇼핑센터 방문, 이런 것들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가는 여행의 방해요소라 생각됐기에 언제부터인가 패키지여행을 자제하고 자유여행을 고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패키지의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은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완전 100%는 아니지만 지역이 다낭이라는 한정된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여유 넘치는 시간과 마음 편한 여행 친구와 함께여서 그랬을 것이다. 가이드가 말하길 다낭은 짦으면 15분에서 길어봐야 2시간 안쪽으로 다 둘러볼 수 있는 거리이고, 연령 때가 조금 있는 관계로 천천히 진행할 것이니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오전 시간을 많이 비워 주니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숙소 호텔방은 바다 뷰가 보이는 15층에, 호텔은 오픈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깔끔하고, 조식 또한 일품에 좋았다. 조식 후 여유로운 시간에는 구글맵을 이용해 인터넷에 올라온 멋진 비치 클럽을 찾아 생 코코넛을 갈아 넣은 커피를 음미하며 홀로 시간을 즐겼다. 일찍 오픈 한 비치 카페에 홀로 앉아 바다의 파도를 보는 것이야 말로 말할 수 없을 만큼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여유로이 즐기고 돌아오면 여행 친구가 호텔 방에서 기다려 주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살짝씩 찾아오던 외로움도 여행 친구와 함께 하니 느낄 수 없었다. '친구'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위로가 되는 친구를 가졌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더도 덜도 아닌 지금 만큼만, 더 바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는, 그저 여행길에서 보폭을 맞추고, 보는 시선의 눈높이를 맞춰,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함께 맞출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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