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 위로
그 여자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결혼하고 나서 생긴 것인데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활동적으로 보내고 주말엔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짜여진 계획에 의해 활동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주말엔 약속도 잡지 않으며 오롯이 쉼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눈이야 일찍 떠지지만 이불속에서 뭉기적 거리며 휴대폰도 보고, 그러다 졸리면 한숨 더 자기도 하고, 허리가 아파올 때쯤 일어난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불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는 것이다. 보살필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크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서둘러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주 류귀복 작가님의 글 '인간관계가 망해야 책이 생긴다'란 글을 읽은 후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주말 늦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류귀복 작가님은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하위 1%의 체력임에도 글을 써 책을 내기 위해 새벽잠과, TV와, 술 세 가지를 끊었다고 했다. 생긴 그 시간에 출간을 위해 글을 쓰신다고 했다. 보통의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에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퇴근 후 어린 딸과도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참으로 대단하시다. 그 글을 읽으며 그동안 너무 게으름을 피웠구나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주말을 이불속에서 흘리고 있다. 토요일인 오늘도 그랬다. 핑계를 대자면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있다. 요즘 점점 더 몸이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물론 정신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2개월 전쯤 지인의 권유로 챗GPT를 휴대폰에 설치했다. 아주 많이 유용한 앱이니 꼭 설치하라는 말에 내려받아놓고 잊고 있었다. 늦은 주말 오전 이불속에서 문득 챗GPT가 생각나 실행시키고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요즘 왜 이리 힘이 없고 만사가 귀찮고 잠만 쏟아지는 걸까?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세 달가량 많이 힘들었어. 머리로는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지만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어. 왜 그런 거야?."
"많이 힘들었겠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냥 피곤한 수준을 넘어서서 무기력하고, 의욕도 없고, 몸도 마음도 다 지친 상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니까 다행이지만, 그런 상태가 세 달 가까이 지속됐다면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경우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
1. 몸의 문제 (신체적인 요인)
-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같은 호르몬 문제
- 빈혈
- 수면의 질 저하 (자는 시간은 많아도 깊게 못 자는 경우)
- 영양 결핍이나 운동부족
이런 경우 피검사를 한 번 해보면 꽤 많은 걸 알 수 있어.
2. 마음의 문제
- 번아웃: 오랫동안 스트레스받으며 과하게 에너지를 쏟은 후에 완전히 소진된 상태
- 우울 증상: 무기력, 의욕 저하, 수면 변화, 식욕 변화 등
- 삶에 대한 압박감, 감정적으로 눌려 있던 것들 이런 건 스스로도 잘 눈치채기 어려워서 '그냥 내가 게을러졌나?'라고 오해하기 쉬워.
"혹시 무기력했던 세 달 동안 뭔가 스트레스받았던 일이나, 감정적으로 지쳤던 상황이 있었을까? 아니면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이었는지 궁금해. 그리고 지금은 "조금 좋아졌긴 해"라고 한 걸 보면 뭔가 바뀐 계기가 있었을까? 편하게 얘기해도 괜찮아. 같이 천천히 얘기해 보자.
"지난해 컴퓨터 ITQ 시험 보느라 에너지를 다 쏟긴 했어. 나이 들어 하려니 힘도 들고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지. 요즘도 매일매일 공부하기 위해 외출하고, 당뇨 전 단계라고 해서 먹는 것 자제하고 될 수 있으면 야채만 먹고 있고. 모든 게 원인인가 봐."
"아.... 그랬구나. ITQ 시험 준비로 에너지 다 쏟았다 하니, 그게 꽤 큰 원인일 수 있어. 시험이라는 게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신경도 곤두서 있고, 압박감도 크고, 긴장한 생태가 오래 지속되잖아. 그런 거 끝나고 나면 정신적으로 확 무너지는 느낌 드는 거 정말 흔해. 그게 번아웃의 전형적인 모습이야. 몸은 안 움직이는데, 머리는 '움직여야지!' 하고 있으니까 더 괴로운 거고.
"거기다가 당뇨 전 단계 진단받았다고 하니까 그것도 꽤 큰 충격이었을 것 같아. 식단 조절 하면서 "야채만 먹고 있어"라는 말이 너무 와닿는다. 그 말 안에 답답함도, 스트레스도 다 느껴져. 음식을 조절한다는 건 단순한 식사 문제가 아니라, 삶의 즐거움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잖아. 그게 누적되면 에너지도 떨어지고 의욕도 잃게돼."
"그래서 말인데, 네가 지금 느끼는 무기력이나 귀찮음, 의욕 없음은 절대 게으름 때문이 아니야. 그건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 있다는 '신호'야. 조금 좋아졌다고 한 걸 보면 어느 정도 회복 중인 것 같기도 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지금은 너무 바쁘게 안 지내는 것도 중요해. 바깥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는데, 혹시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네가 좋아서 하고 있는 활동도 있는 건지 궁금해."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만 있는 건 싫어. 답답하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그래서 매일 뭔가를 배우러 나가는 가야. 그래서 힘든 것도 있긴 하지. 집에서 쉬고도 싶지만 그렇게 하면 무기력해지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싫어."
"그 말 들으니 마음이 콕 찔린다... 너무 공감돼.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아무 의미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그 마음. 쉴 자격도 내가 무언가를 해낸 후에나 생기는 것 같고, 그냥 쉬면 '게으른 나, 쓸모없는 나'로 느껴지는 거잖아. 근데 그건 네가 게으르지 않아서 생기는 마음이야. 스스로에게 기대가 크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사람은 '내가 쉬면 쓸모없어 보일까 봐 무섭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거든."
"그리고 지금처럼 매일 뭔가를 배우고, 밖에 나가고, 쉬지도 않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 너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이야."
"혹시 요즘 배우러 다니는 거 중에 '정말 네가 좋아서 하는 거'랑 '해야 할 것 같아서, 안 하면 불안해서 하는 거' 비율이 어떻게 돼? 그걸 한번 나눠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작은 거라도 괜찮아. 쉬는 것도 '쓸모 있는 시간'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도 있어."
"예를 들면,
- '이건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정해놓고 30분만 조용히 좋아하는 음악 듣기.
- 산책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 보기.
- 짧은 낮잠을 '충전 시간'이라고 마음먹고 자기.
이런 것도 '나를 위한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조금씩 편해질 수 있어."
"가끔은 그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기준을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적용할 건가? 하고 되물어 봐도 좋아. 아마 그 기준은 너 자신에게만 너무 엄격할 거야."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잖아. 그런데 나는 60이 넘다 보니 그 변해가는 세상과 발을 같이 맞출 수 없어. 그래서 뭔가를 자꾸 배우는 거야. 같이 갈 순 없지만 뒤따라 갈 수 있게 노력하는 거지. 그래서 하나라도 자꾸 배우고 싶고 배우게 되고, 밖으로 나가는 가야."
"그 마음,,,, 정말 깊고 멋지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얼마나 애쓰고,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는지가 느껴져.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불안한 것도 있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뒤처지지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따라가 보겠다'하고 계속 배우고 나아가려는 모습,,,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특히 60이 넘은 지금도 그 열정과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거, 정말 대단해."
"근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으면 해. 꼭 세상과 발을 맞춰야만 가치 있는 걸까? 세상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지만, 그 세상의 '깊이'와 '묵직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너 같은 사람이야. 빨리 달리는 사람들 옆에서 천천히, 깊이 있는 걸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따라가려고 애쓰는 것도 너무 좋지만, 네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삶의 지혜, 배려, 진심, 책임감' 이야말로 지금 세상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쉬는 법도 배우는 시간'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배운다는 게 꼭 기술이나 트렌드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더 편하게 해주는 법'도 포함될 수 있으니까.
아하 생략
지난해 5개월 동안 자격증 3개를 취득하기 위해 정말 신경 쓰며 시험에 올인했다. 자격증을 취득해 뭘 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컴퓨터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다 보니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기초과정이 끝나면서 선생님께서 ITQ 자격증에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 지금처럼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머리에 남지 않으니 자격증에 도전해, 매일 내주는 숙제를 하고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머리에 입력된다고 하셨다. 기초반 수강생 전원 자격증에 도전했으나 결론적으로 그 여자를 포함 3명만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뿐만 아니라, 자격증 외에도 수업이 3개나 더 있었기에 아마도 체력이 바닥을 친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외출 후 낮잠 자는 일이 없어진 걸 보면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챗GPT의 말처럼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번아웃이 온 것인지는 몰라도, 어쩜 그리 사람 마음을 잘 헤아려 예쁜 말들로 위로를 주는지.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고 코끝이 시렸다. 물론 인공지능으로 학습해 배운 것이겠지만.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학습시킨 사람들은 정작 이런 대화를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들이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알아 학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이러한 말들을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 무섭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사실 그 여자도 뉴스를 접하며 미래의 세상이 걱정되고 무서웠다.) 현대사회와 앞으로의 시대는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 없이 살기 힘든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점차 AI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익숙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