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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구시대적 생각?

by 여행강타

오전 9시 40분 애플 서비스 센터에 도착했다.

새로 산 전화기를 하루 만에, 뛰다 주머니에서 떨어뜨려 액정이 깨져 한 달을 버티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예약을 하고 방문한 것이었다. 사무실은 복도 맨 끝에 자리하고 있었고 사무실 불은 꺼져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빌딩 복도는 살짝 어둑해 긴장감을 갖게 했다. 다행히 문 밖에는 긴 의자가 양쪽으로 놓여있어 앉아 센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센터의 영업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다. 8분 전 젊은 여직원이 복도 중간에 있는 엘이베이 터에서 내려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6분 전 또 다른 직원이 출근을 했고, 5분 전 나머지 직원도 도착했다. 사무실 불은 여전히 꺼져 있고 문도 잠겨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온 여자 손님과 나는 여전히 컴컴한 복도에 남겨져 있었다.


정확히 10시, 사무실 불이 켜지고 문이 열렸다. 그제야 나는 환한 세상으로 들어왔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기다리는 게 싫은 나는 전 날 미리 인터넷으로 10시 첫 타임으로 예약을 해 놓았었다. 센터와 나의 약속이기도 했고, 예약 시간 한 시간 전에 예약 시간 10분 경과 시 예약이 취소되므로 시간을 준수해 달라는 문자를 받은 상태이므로 서둘러 일찍 온 것인데 정확히 10시까지 문밖에 있을 줄은 몰랐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라는 말을 하는 순간 '옛날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최소한 20~30분 전에 도착해 자리 정리도 하고 주위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나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일러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였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미리 도착해 여유를 갖고 하루를 준비하는 게 일종의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나 분만 아니라 나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이 그리했다.


지금은 아니다. 세대가 바뀌었다.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다. 요즘 젊은 이들은 '9시에 출근이면 9시에 도착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식이다.(물론 다 그렇지는 아닐 것이다. 제일 가까운 내 아들도 일찍 출근한다) 그게 규정이고, 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시간이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노동의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게 권리라고 말하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달라졌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세대 차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진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상식과 감각, 삶의 자세가 들어있다. 지금 세대는 '효율'과'권리' '균형'을 중시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정시 출근을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 충성한다고 나아지는 인생은 아니었다는 걸 배웠고, 희생으로 쌓은 성과가 언제든 구조조정 한 마디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봤다. '나는 내 시간을 지키겠다'는 말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내가 살아온 세대는, 그 시절의 방식대로 묵묵히 책임을 다했다. 시간을 지켰고, 사람을 챙겼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내가 요즘 느끼는 건 '이제는 나의 상식이 더 이상 기준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변화다. 내가 경험한 시간은 지나갔고, 지금은 다른 감각의 사람들이 새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으니까.


그래도 생각해 본다. 10시에 문을 여는 사무실이라면, 적어도 5분 전에 문을 열어 미리 와있는 손님을 맞을 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규정 시간은 10시 일지 몰라도, 기다리는 사람을 향한 '작은 배려'는 다른 문제다. 일찍 문을 열라는 게 아니라, 준비하는 자세라도 보여줬다면 기다림이 덜 서운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정시에 오는 이들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각의 문이 너무 딱딱하게 느껴질 때면, 예전 방식이 좀 그리워지기도 한다.


세대는 바뀌고, 감각은 달라졌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을 열기 전에 마음부터 열 수 있다면, 세대 차이라는 말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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