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구축주의, 데스틸, 바우하우스로 보는 모던디자인
산업혁명 이후 역사적 아방가르드(미래주의, 다다, 초현실주의)는 예술과 생활의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넘어 예술에 기초하는 새로운 생활의 실천을 도모했는데, 이때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 기능주의로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의 다양한 지류들은 19세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며 발전해 나갔는데, 이때 등장한 러시아의 구축주의는 프롤레타리아(약자)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예술을 구축하고자 했다.
물론 아직 농업에 의존했던 당시 기술의 원시성 때문에 구체적 실현은 어려웠지만, 사진과 문자이미지를 활용한 포토몽타주식 구축주의의 시각언어는 대중에게 혁명의 정신을 매개하는 예술로 수용되었고, 그래픽디자인적으로 훌륭한 작품들이 다수 나왔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구축주의의 이념을 흡수한 테오 반 되스버그가 몬드리안과 함께 시작한 데스틸 운동의 이념 역시 “생활과 예술이 더 이상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였고, 산업시대에 맞춘 예술양식을 창조하기 위해 설립된 독일의 디자인 교육기관인 바우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우하우스 초창기 바이마르 시기는 공예에 중점을 둬 기계미학을 거부하고 중세식 영적 표현을 탐구하는 예술을 가르쳤지만, (테오 반 되스버그는 가망 없는 낭만주의에 빠져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요하네스 잇텐이 사임한 데사우 시기부터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여 물질적 생활을 위한 기능주의 중심의 과정을 운영했다. 이러한 이념의 전환을 1923년 바우하우스 최초의 전시회에서 엿볼 수 있는데, “바우하우스는 기계를 조형의 근대적인 수단으로 긍정한다.”라는 이념을 내세워 산업적 표준으로서 독일디자인을 홍보했다.
구축주의, 데스틸, 바우하우스 모두 새로운 기술을 중요시했고, 순수예술로써 소비되는 예술은 그 안에서만 맴도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철저히 배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디자인적 역량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길 원했기에 일상의 예술로서 디자인을 만들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