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을 원서로 읽는 기분 (1)

by 북바이북
calendar-1990453_1280.jpg

모든 직장인은 구내식당 메뉴만큼이나 휴일 일정을 중요하게 체크한다. 2024년 가을은 특히 휴일이 많았다. 9월 추석 연휴, 9월 말부터 10월 9일 한글날까지 지속된 징검다리 연휴. 꿈결 같은 ‘빨간날’ 행진이 마무리될 무렵,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아직 한참 남은 1년 후 '2025년 10월'을 주목했다. 하루만 연차 내면 열흘 동안 쉴 수 있는 역대급 황금연휴가 화제였다. 소식을 접한 나도 바로 달력을 확인하고, 생각했다.

‘이제 분야 바꾸고 소설MD 그만할까.’


연휴가 후반부로 돌입하는 2025년 10월 9일에 나 혼자 휴일-저녁 출근해야 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 첫째 주 혹은 둘째 주 목요일은 소설MD의 공식 야근 날이다. 발표 즉시 특별전 페이지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10월 9일’이라는 날짜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글날이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글날의 기운을 받아 내년에는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 아냐? ‘문학과 예술의 진주’ 노벨문학상을 한국인 문학가가 받기에 이보다 더 근사한 날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글월 문(文)의 신’은 10월 9일을 한글 창제의 축복 하나만 기억하는 날로 남겨놓았다. 대신 연이어 이틀을 기념하라는 듯 다음날인 10월 10일로 경축일로 지정해 주었다(국가 공휴일 지정이 시급하다). 1년 더 기다릴 필요 없이 2024년 10월 10일 저녁 8시, 한강 작가가 한국 작가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출판업계, 넓게는 사회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한강의 책을 보유한 출판사는 유례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신문사 편집국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깊은 밤임에도 대형 서점에 고객이 몰렸고, 취재와 촬영이 이어졌다. 나 역시 이벤트 페이지 오픈을 숨 가쁘게 완료했다.


온라인서점 초기 화면에 큼지막하게 노출된 배너를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는 ‘빨리도 대응한다’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젓네’ 같은 반응이 올라왔다. 사실 항상 하던 일이다. 이벤트가 바로 올라오는 이유. 후보자별 여러 버전의 페이지를 미리 준비해놓아서는 아니다. ‘수상 작가’ 영역만 제외하고 기획전 페이지를 모두 만들어놓은 뒤 발표 직후 채워 넣는다.


매년 수상자가 발표되는 밤 8시 정각 약 5분 전부터 나는 약간은 상기되고 약간은 불안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기한다. 노벨문학상 행사를 챙기기 시작한 초기에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옵션을 ‘뉴스’로 놓고 검색 결과 새로고침을 무한 반복했다. 지금은 유튜브 생중계로 본다. 시간이 되면 발표자가 문을 열고 나와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고저 없는 어조로 작가 이름을 읊는다. 유머 농도는 0퍼센트. 나라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60초 후 공개합니다”라고 농담도 할 것 같다. 자막도 안 띄워줘서 대체 누가 받았다는 건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겨우 수상 작가 이름을 확인하고 나면 번개처럼 이벤트 기획안을 완성해 디자이너에게 전달하고, 작가의 책 목록을 정리하고, 출판사 영업자에 전화를 걸어 재고를 확인한다. 이 사이 이벤트 페이지가 준비되면 최종 검수 후 오픈한다. 초기화면 등 눈에 띄는 영역마다 배너를 노출한다. 엑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게시도 챙긴다. 1년 중 소설MD의 시간이 가장 밀도 있고 빠르게 흐르는 1800초이다. 일을 마치면 언제나 미미한 두통을 안고 집으로 향하고는 했다.


위 과정에서 받는 경탄, 열기, 충격이 2024년에는 최소 50배 이상 더 강력하게 전해졌다. 물론 긍정적 의미에서다. “2024년 노벨문학상은 한국 작가 한강에게 수여한다.” 마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이 선언했을 때 ‘내 귀를 의심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머릿속이 정전되었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 동료, 가족, 친구의 연락을 100통은 받은 것 같다. “너 노벨평화상 덕분에 좋겠다”라는 말도 들었다. 원래 말실수를 지적하지 않는 성격이라 “너무 좋지”라고 (하루 뒤) 답을 보냈다. 소설MD와 한국 출판계의 평화에 노벨평화상보다 더 크게 이바지한 일이므로 틀린 말도 아니다.

9788954682152.jpg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

웃기면서 슬프게도, 정작 중요한 책 판매 현황은 이벤트 오픈을 마친 후에야 확인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첫 책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의 판매량을 조회한 순간 ‘내 눈을 의심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화면에는 서점에서 일하면서 처음 보는, 단위가 다른 숫자가 찍혀 있었다.



9788936434595.jpg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 2022

비슷한 판매 급상승은 전에도 경험한 적 있다. 2016년 5월 16일, 역시 한강이 『채식주의자』(창비)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을 때다. 당시 판매가 크게 오른 책은 수상작인 『채식주의자』 한 편이었다. 2024년에는 한강이 저자로 등록된 20여 편의 책이 동시에 움직였다. 노벨문학상과 부커상의 차이에서 기인한 일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국에서 출판된 최고의 영어 소설을 뽑는 ‘부커상’의 번역 부문이다. 2016년에 현재 방식으로 개편된 이 상은 특정 ‘작품’ 하나를 선정한다. 반면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예술가가 걸어온 문학 세계 전반을 살핀다. 활동 기간이 길고 작품 수가 많으면서 전체 작품이 고르게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여야 최종 후보에 들 확률이 높다. ‘작가의 전작’이 수상작인 셈이다. 독서가가 챙겨 읽어야 할 책이 많고 파급력이 크다. 게다가 2024년은 국내 번역을 기다릴 필요 없이 모든 책이 유통되고 있는 최초의 해. 일주일 내 100만 부 판매 돌파는 예정된 일이었다.


우리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그전부터 ‘원서’로 읽고 있었다. 뜻깊은 일이다. 반면 해외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소설 분야 기준, 열한 편의 책 중 2024년 10월에 영문 번역본이 판매되고 있는 책은 다섯 편 정도였다. 나는 더 많은 책이 외국에 번역 소개된 다음에야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또한 1970년생인 한강은 익숙하게 봐온 역대 수상자들보다 젊었다. 그래서 몇 년 전 한 출판사 영업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한강이 20년 안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분은 10년을 예상했다. 5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시간을 너무 길게 잡았지만, 나 역시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받을 한국 작가로는 한강을 꼽아왔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웅숭깊은 시선, 시적 문장과 표현, 공감을 끌어내는 주제 의식을 두루 갖춘 작품의 탁월함이다. 상처의 치유와 인류애적 연대 등 스웨덴 한림원이 주목할 만한 진중한 목소리를 작가 인생에 걸쳐 계속 세상에 내보낸 것도 주효했다.


멈추지 않고 성장한 점도 결정적이다. 작품 발표 순서대로 보면 한강은 2014년에 『소년이 온다』(창비)로 정점에 올랐다. 7년 앞선 작품인 2007년 작 『채식주의자』가 2016년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까지 획득했다.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거장으로 인정받은 첫 한국 작가가 된 것이다. 이런 때, 신작을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기 마련이다. 부담도 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런데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내놓았다. 데이비드 린치가 떠올랐다. 앞으로 더 보여줄 것이 있을까 궁금하게 만든 역작 <멀홀랜드 드라이브> 다음 영화로 새롭고 낯선 <인랜드 엠파이어>를 투척했기 때문이다.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또 한 번의 독서, 북토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