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을 원서로 읽는 기분 (2)

by 북바이북
9788954682152.jpg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전작 중 주요하게 붙드는 주제는 『소년이 온다』를, 지배적인 시각적 이미지는 『흰』을 계승한다. 『소년이 온다』에서 ‘5월 광주’의 기억을 되살린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의 비극적 현장을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의 눈앞에 재현한다. 두 소설은 모두 평범한 ‘오늘의 일상·삶’과 긴밀히 연결되는 참혹한 ‘과거의 역사·죽음’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한강의 작가적 소명감을 드러낸다.

다만 두 현대사 소설의 표현 방식은 다소 다르다. 『소년이 온다』는 공기가 무겁게 내리깔린 엄숙한 소설이지만 서사는 또렷하고 전달력도 높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형식을 자유롭게 풀어 헤친 실험성이 눈에 띈다. 『소년이 온다』를 처음 읽었을 때 ‘일부러 흑백으로 만든 현대의 무성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는 시, 소설, 사진, 공연,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조합해 완성한 비디오 아트가 떠올랐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이는 ‘하얀색’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경하가 눈발을 헤치며 친구의 집을 찾아갈 때 펼쳐지는 눈 세계의 광경은 감각을 압도한다. 정화를 뜻하며, 빛과 어둠 사이를 부유하며, 위령제의 저고리를 연상하게 하는 색. 하얀색은 한강 문학 특유의 초월성을 다시 한번 한껏 끌어올렸다. 한강은 가장 먼저 읽으면 자신의 책으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꼽았다.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반대로 첫 책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을 읽은 다음 마지막 차례로 한강 문학의 결정체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 울림이 몇 배 클 것 같다.

9788936434120.jpg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세 편의 대표작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를 통해 한강은 세계와 서구 문학권에서 활발하게 이야기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시작으로 말라파르테 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등 해외 문학상을 연이어 받았다. 2019년 가을에는 노벨문학상의 나라 스웨덴에서 개최된 예테보리 도서전에 초대되어 현지 독자와 소통하기도 했다. 같은 해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가 한강보다 2년 ‘늦게’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언젠가 한강의 차례가 올 것임을 예감했다. 결국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발표문에 전율하는 날을 맞았다.


MD 인생에서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일을 처리한 2024년 10월 10일 밤. 회사를 나선 시간은 이미 날을 넘긴 12시 20분이었다. 운전면허에 더해 전투기 면허까지 보유한 듯한 택시 기사님의 폭풍 질주에 몸을 맡겨 집에 순간이동했다. 감격이 과잉 투여되어서인지 세 시간 만에 눈이 떠졌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집 근처 가정의학과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 아파서가 아니다. 이제부터 과로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단 연료부터 채워 넣고 시작했다.


이럴 때 무리하지 언제 무리하냐 자체 세뇌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연장 근무와 휴일 근무를 이어갔다. 이미 10월에 접어들었는데도 너무 바쁘고 일 말고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특별한 노벨문학상이어서다. 한국 작가가 또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최초 수상’은 단 한 번밖에 없지 않나. 역사적 사건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며 업무 의욕을 불태웠다. 경력 포트폴리오에 ‘2024년 노벨문학상 특별전 진행(한강 수상)’ 한 줄을 넣을 수 있다니 도서MD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교보문고를 비롯한 여러 서점과 건물에 축하 공간이 마련되었다. 한강의 책은 물론이고 한강이 추천한 책과 부친인 한승원 소설가의 책까지 다시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외 언론은 연일 한강과 노벨문학상 기사를 발행했다. 방송사는 작가가 과거에 출연했던 영상을 발굴하여 섬네일을 바꿔 유튜브에 게재했고, 여러 인기 크리에이터가 한강을 특집으로 다뤘다. 나는 수상을 축하하는 일간지 전면 광고를 내고 싶었는데 수액 맞느라 돈을 많이 써서 다음을 기약했다.




들뜬 두 달이 지나고 12월이 되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 전시 영역에 한강의 그림이 추가되었다. ‘노벨상 주간’에 돌입한 것이다. 나도 10월 노벨문학상 특별전에 이어 조금 더 자세하게 한강의 세계를 파고든 두 번째 기획전을 진행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특집: 한강의 책, 세계, 이야기’라는 제목을 단 특집에서 한강이 2024년 10월 10일(!) 오전에 회신을 보낸 《매일경제》 인터뷰 기사 전문을 김유태 기자의 허락을 구해 공개했다. 수상 직후의 반응과 인터뷰, 노벨문학상 주간에 발언한 강연과 수상 소감을 그러모은 심층 기획전이었다.

9788932043562.jpg 『빛과 실』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5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거행된 영광스러운 수상 현장을 담은 책이 이듬해 봄에 출간된 『빛과 실』(문학과지성사)이다. 기쁨을 회고하는 이 책과 달리 근심 어린 시선을 담은 기사가 비슷한 시기에 표출되었다. 한강 효과는 반년 만에 사라졌고 문학 읽기가 유행하기는커녕 출판계 전체 매출이 줄었다는 것이다. 역대 최저 43.1퍼센트로 떨어진 2023년 성인 독서율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지킬까 순간 겁도 났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2024년 개천절 일주일 후 도착한 노벨 메달은 (그동안 출판계에서 하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많이 했더니) 단군 할아버지가 ‘옜다’ 던져놓고 간 선물은 아닐지 상상했다. 이제 단군왕검 그만 찾고 대신 벼락같은 선물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일시로 늘어난 독자가 책과 독서의 매력을 계속 느끼게 하는 것은 겨우 반년 만에 이루기는 힘든 과업이다. 최적의 정책과 마케팅 계획을 느리더라도 담대하게 마련해야 한다.


한편, 이번 수상의 의의를 산업과 판매의 논리를 배제하고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책의 존재 이유와 우리가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모든 작가는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는 각자 다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를 빌리면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썼고, 전년 수상자인 욘 포세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했으며, 한해 앞서 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는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해부학적 예리함”을 문학에 담았다.


이 모든 주제가 조금이라도 더 깊게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도록 소설가는 치열하게 이야기를 구성한다. 문학상은 이 결과물을 평가하고 전파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모든 선택의 제1 준거는 ‘그거 돈 돼?’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스웨덴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을 통해 평소 무용하다 여겼던 문학 읽기의 소중함을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돈으로 잴 수 없는 큰 수확이다.


2019년,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인 ‘미래도서관’은 한강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작가는 약 100년 동안 봉인되었다가 2114년에 공개될 소설 원고를 프로젝트 측에 전달했다.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이다. 지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어린아이들은 노인이 되어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바람이기도 하고 궁금증이기도 한 질문이 남는다. 먼 훗날 2114년 한국 사회는 2024년 한국 사회보다 나아져 있을까? 폭력에 맞서는 저항,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응시 그리고 ‘한강다움’을 이루는 모든 호소. 이런 한강 문학의 정신은 책이 100만 부 넘게 읽히는 동안 시나브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을까? 세상과 독자와 문학은 공명할까? 그렇게 되길 바란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각자 생각해보면 좋겠다. 특히 한강의 성취를 기뻐한 사람이라면 더욱 큰 용기와 힘을 내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쉽지 않은 책이며 읽는 괴로움 또한 크다.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많음을 알면서도 작가는 낯선 제주 방언을 길게 이어간다. 희생자의 이야기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인선의 손가락은 3분마다 바늘로 찔러서 피를 내야 한다. 초반부부터 전해지는 참혹한 통증이 작품 내내 가슴을 할퀸다. 이 정도 아픔을 나눠 느낄 각오도 없이 수만 명의 죽음을 그린 책을 읽을 생각이냐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상처와 치유를 말하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듣는 이의 윤리를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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