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여름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두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
A 직원이 예산 실수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예산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래서 “그럼 원안대로 바꿔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짜증을 내며 “빨리 처리하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알겠다, 고맙다”고 말하고 말았다.
두 번째 사건.
B 직원은 내가 협조 요청 메일에 쓴 단어 하나에 꽂혔는지,
답변을 해줘도 이틀에 걸쳐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공식 문서도 아니었고, 협업 중인 상황이었기에 맥락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었음에도
그 단어의 정의까지 들먹이며 나를 달달 볶았다.
이 두 가지 일을 단기간에 겪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만만한 이미지인가?’
‘아니면 36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사람들이 다 예민해진 걸까?’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회사에서의 감정과 나의 감정은 분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전의 경험이 말해준다.
가만히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내 배려는 약점이 되었고, 결국엔 이용당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했다.
사실 마음속에선
‘내가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를 잃고 싶지도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친한 동료에게 두 사건을 털어놓으며 참고 견뎠겠지만,
이젠 아니다.
더 이상 참고 견디는 삶은 새로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내 강아지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내 인생은 그 시간 안에서 그려져 있다.
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참고 견디는 것은 결국 나를 해친다.
지금의 내 판단과 대응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건 내가 겪어낸 사건들로 인해 새롭게 쓰기 시작한 인생의 챕터이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 막이 끝나고
마지막 페이지를 써내려 갈 때
비로소 내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살면 좋겠지만,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인생.
나는 이 인생을
뜨개실처럼 천천히, 정성껏,
내 방식대로 풀어가며 완성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