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자기 보호
내 종교는 가톨릭이다.
아빠는 조부모님을 따라 불교를 믿으셨지만, 80~9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천주교를 처음 접하고 먼저 세례를 받으셨다.
그 뒤로 엄마가 세례를 받으셨고, 내가 열한 살쯤 되었을 때 동생과 나도 함께 세례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탓이옵니다”
와 같은 문구를 매주 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무례를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았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상처받고 돌아오면 친구들은 늘 말했다.
“사람은 바뀌지 않아. 그냥 멀리하는 게 최선이야.”
이런 말들의 의미를 20대에는 수업을 통해,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던 시절, 성당에서는 작은 글귀가 적힌 책갈피를 나눠주었고, 내가 받은 책갈피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운명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욱 상대를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상대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내 사고는 흐려지고, 모든 것이 내 무능력 때문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고, 결국 나는 병이 들었다.
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이해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남에게 하지 못했던 ‘거절’을 하기 시작했고, 나만의 기준과 경계를 분명히 하며, ‘이건 아니다’ 싶은 일에 저항하게 되었다.
여러 사건을 겪고 난 후, 오늘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평화의 기도문처럼 살아가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의 나는 그 말씀에 어긋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다 있을 것이고, 나쁜 사람들은 언젠가 벌을 받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내가 미워하고 맞서 싸워도 되는 건지.
평생 마음에 새기며 살아온 문장들을 곱씹으며, 지금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열렬한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는 언제나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가이드라인 같은 존재였다.
이제 와서 그 말씀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건지…
출근길,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나의 신앙적 가치와 자기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근무가 시작되면 이 고민은 사라지겠지만, 그냥 남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