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열 여섯 번 째 이야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붙잡듯, 수첩에 매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땐 아직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나를 지켜줄 제도도,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가 겪은 일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기록을 거듭할수록, 보이지 않던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업무 분장표는 명백히 불공정했고,
전화번호표에 적힌 내 이름 옆에는
실제 내가 맡은 주요 업무가 아닌, 보조 업무만 적혀 있었다.
대신 다른 선임이 내 업무의 30%를 한다는 이유로 그 타이틀이 본인 업무와 함께 주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내가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퇴근하는 나를 보며 누군가 "C가 업무로 너무 힘들거야. 옆에서 잘 도와줘" 라고 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뒤, 내 핵심업무만 넘겨받은 직원이
“그걸 다 혼자 하셨다고요?”라고 놀라며
늦은 위로를 건넸을 때서야, 나는 조용히 웃을 수 있었다.
아무튼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다.
나는 그에게 어느정도 적응의 시간을 준 후 업무 재분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이랬다.
“0씨는 아직 본인의 능력을 나에게 증명하지 못했어요.”
그는 나를 겪어보지 않았으나 나에 대해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최소한, 전화번호표의 내 업무만이라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업무는 중요한 일이에요. 내가 뭘 믿고 0씨 이름 옆에 넣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분명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인데, 왜 나는 그 일을 ‘내 업무’라고 말할 수 없을까.
도저히 버거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제발, 부서 간식 사는 일이라도 빼달라고.
그러자 그는 말했다.
“그럼 그 일을 누군가는 대신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불쌍하지 않겠어요?”
"0씨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어요. 가세요"
그 순간, 문득 스쳐 지나갔다.
아, 이곳에서는 내가 살아남을 수 없겠구나.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퇴사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