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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DIVE

1막 스물 일곱 번 째 이야기

by 라라클

엄마는 다시 같이 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병가를 앞두고 불이 꺼진 사무실 한켠에서 나는 조용히 업무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내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나는 더 이상 회사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


문득,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괴롭힘의 주동자에게 메일을 쓰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그에게 전하고 싶었다.
혹시 내가 죽게 되더라도 누군가는 이 메일을 보게 하려고 참조란에 동생의 주소를 넣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쓸 만한 물건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마치 작은 유언처럼.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다. 마치 절벽 위, 다이빙 보드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병가를 앞둔 어느 날, 실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00씨, 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어.”
그 말의 의도는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 나는 발령받자마자 계속 야근했고, 팀장도 나서서 도와줬다.
나의 발작을 바로 눈앞에서 본 사람인데도 그 말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병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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