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도시의 하늘엔 언제나 구름이 있다.
어떤 날엔 희고 가볍고, 어떤 날엔 잿빛으로 무겁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하늘을 보는 일은 너무 번거롭고, 구름은 그저 배경일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막상 구름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형태를 그린다.
둥글고, 몽글하고, 손바닥을 여러 개 겹쳐 놓은 듯한 모양. 하지만 실제 하늘의 구름은 그런 모습으로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다.
구름은 일정한 형태가 없다. 늘 변하고, 늘 다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한두 개의 구름만을 반복해서 그린다. 편리하게 단순화된 구름.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무한히 다양한 존재 앞에서, 익숙한 모양을 끼워 넣고 안도하는 시야가 아닐까.
도시의 삶은 이와 닮아 있다. 모두가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고, 비슷한 목표를 세운다. 더 나은 직장, 더 안정된 관계, 더 많은 선택지. 바삐 움직이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미뤄둔 과제를 생각한다.
도시는 멈추지 않는다. 고개를 들 틈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아주 드물게 고개를 들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하늘엔 구름이 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방향도 갖지 않은 채, 그저 떠 있다.
그 구름은 묻지 않는다.
지금 너는 누구냐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고,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은 구름의 일이 아니다.
구름은 그냥 있다. 흘러가거나, 머무르거나, 사라진다.
계획이 없다. 정의도 없다.
그래서 구름은 해방이다.
삶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려 애쓰는 모든 일로부터의 해방.
구름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바라봐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구름을 본다.
어쩌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존재는 그렇게,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된다.
도시는 자꾸 무언가가 되라고 한다.
더 나은 내가 되라고, 발전하고 성장하라고, 실패하지 말라고.
‘되는 것’은 언제나 칭찬받지만, ‘있는 것’은 종종 무시된다.
그러나 구름은 ‘있는 것’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흘러가며 비를 내리고,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만들어낸다.
그 모든 작용은 구름이 애써 하려 한 일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도시의 삶은 그것을 잊게 만든다.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이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래서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
변화하는 구름을 따라가며,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익숙한 것에만 머물렀는지를 알아차리기 위해.
구름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름을 매번 같은 모양으로 그린다.
구름이 아니라, 구름을 바라보는 방식이 문제다.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지만, 사실은 익숙한 형태의 인생을 답습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를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
그 희망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 희망이, 자기 자신을 얽매는 형태가 되어선 안 된다.
구름은 흘러가지만, 그 흐름엔 서두름이 없다.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그 흐름을 보는 일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도시의 하늘은 가려져 있다.
높은 빌딩과 현수막과 전광판이 시야를 막는다.
그러나 구름은 그 위에 있다.
늘 그 자리에 있고, 늘 다르게 흘러간다.
그것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구름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습으로 보여준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그 방식이 지금 시대엔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본 것만큼만 살아간다.
그렇다면 가끔은 구름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형체 없는 자유이며, 무심한 헌신이며, 의미 없는 의미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도시 위를 떠다니는 구름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