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전서림에서
1.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해석의 과정이 아니다. 같은 문장을 보고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끌어내는 일이 반복된다. 독서모엠에서는 항상 그러했다. 같은 문장을 읽었지만, 각자가 떠올린 것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책은 단순히 활자로 이루어진 기록이 아니다. 그것을 읽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이 덧입혀진다. 같은 구절을 읽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칠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바꿀 문장이 된다. 한 문장이 누군가의 오랜 기억을 건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미처 몰랐던 감정을 깨우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결국 ‘다른 이야기’를 읽는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차이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보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오해했던 부분을 누군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2. 책을 다르게 읽는 것처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피상적인 정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의 대화 속에서도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오해 속에 빠진다. 짧은 대화 몇 마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몇 개만 보고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내린 결론은 대개 틀린 경우가 많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차분해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을 수 있고, 늘 밝아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3.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은 너무 성급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린다.아니 오히려 어쩌면 “내 니 그럴줄 알았다” 순간의 짜릿함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오해가 쌓여도 스스로의 판단이 맞다고 믿고, 질문보다는 확신을 택한다. 하지만 세상을 단순한 공식처럼 바라보는 순간, 관계는 점점 단절된다.
우리가 할 일은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를 하나의 정해진 틀에 가두는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관심을 가지고 묻고, 기다리고,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를 지켜보는 것. 결국,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만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4. 요즘 내가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질문은 관계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내 친구에게 배운 것인데, 그 친구는 단정 짓는 대신,맥락에 맞게 “왜?”라고 항상 묻는다. 본인이 스스로 누군가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이 사람의 발언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래. 묻는 순간, 우리는 상대의 진짜 이야기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해는 가만히 두면 점점 단단해지지만,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자. 더 자주 묻고, 더 많이 대화하자.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단정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5. 우리의 인생은 스스로 만든 단단한 경계를 허물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은 불완전한 조각들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성장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관계도 다르지 않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내가 대화해 봤는데 저 사람은 이런 성향이더라—이런 단정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다. 하지만 더 많이 묻고,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순간, 그 벽 너머의 더 넓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해는 단순히 상대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하는 제약일지도 모른다.
6. 우리는 어떤 사람을 쉽게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상대만을 향한 태도일까? 사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나 스스로가 가질 수 있었던 더 넓은 시야와 깊은 통찰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내 사고의 확장도 함께 멈춰버린다.
7. 오해는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아끼지 못하는 태도다. 익숙한 관점 속에서만 머무르며,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은 결국 내 세계가 넓어질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일이다. 매일 스스로 선글라스를 쓰고서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고, 저 사람은 이렇다고 단정 짓는 자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 그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음을 인지하고 벗어볼 결심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