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한 마디가 세상을 구한다

혼돈의 카오스에서 내 이성을 잡아준 승객

by 루이스

6월의 첫 비행 목적지는 악명 높은 카이로였다.

수피 비행 때 카이로를 간 적이 있었는데 한 승객이 승무원 좌석에 앉아 종이컵에 소변을 누고 화장실에 던져버린 사건 말고는 무난했어서 이번도 별생각 없이 갔다.


그런데 이번이 가장 힘든 비행이 될 줄이야.

나일강

어머니가 당뇨가 있다고 계속해서 무언갈 요구하는 승객

(당연히 도와드리겠지만 특별대우를 바라는),

무릎 수술을 해서 다리를 펴야 하니 비상구 좌석에 앉겠다고 하는 승객

(비상구 좌석엔 비상탈출 시 도울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음),

한 사람이 커피를 시키면 그 주위 5-6명이 질 수 없다는 듯 시키고,

가지고 가면 그 옆 승객들이 또 시키고,

끊이지 않는 콜벨 등


그동안 했던 비행과는 차원이 다른 비행이었다.

갤리에서 분을 삭이며 마음을 다잡은 게 몇 번이나 되었다.


그러다 이 화를 모래 덮듯 감싸준 승객이 있었다.


비행에서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키즈팩이 있다. 마지막 줄에 아이들과 나란히 앉은 중년의 이집션 승객이 키즈팩을 못 받아서 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물어보았다. 서비스 중이라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서비스가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나 키즈팩을 주며, 늦게 가져다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승객이 이렇게 바쁜데 잊지 않고 가져다줘서 너무 고맙다는 거다. 원래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는 거고 심지어 늦게 드린 건데, 힘든 비행에 감사 표현을 들으니 바로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드디어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니! 반대로 내가 고마워 뭐 더 필요한 거 없냐 물어 주스를 가져다 드렸다. 스몰 톡을 나누던 중 그 승객이 내 미소가 너무 예쁘다며


“Your smile is like sunshine!”

이라고 했다.


마음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비행이 끝날 때쯤에 캐빈으로 가려는데 그 승객이 나를 잡았다. 그리곤 너무 작은 거지만 자기 마음이라며 쪽지와 초코바를 건네주는 거다.

깨알 선샤인

그날 비행은 내 이성을 뒤집어 놓았지만 이 승객 덕분에 하루의 마지막은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신은 나에게 최악은 면하게 하는구나 했다. (무교임)


그 승객 자체가 굉장히 밝고 예의 바른 성격이었다. 어느 곳에서 서비스를 받든 간에 환영받을 것이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엄마의 이런 모습을 닮아 바른 인격으로 자랄 것임에 틀림없다.


개도국 승객들에게서 thank you, ~please라는 표현은 정말 듣기 힘들다. 언어 장벽 때문일 수도 있다 쳐도 모든 유럽, 동아시아 승객들이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감사 표현은 하는 걸. 그래서 문제는 교육일 가능성이 큰데 그래서 처음엔 슬펐고 마음이 안 좋았다.

(항상 케바케라는 거.)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도 있고, 기내 좌석에 앉으면 셀카부터 해서 동영상을 찍고 승무원도 동의 없이 막 찍는 사람들도 흔하다. 화장실 변기를 처음 보는 사람도 있단다. 그 나라에서 태어난 운명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고,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내가 누린 것을 못 누려본 그들이 안타까웠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게 감사했다.


그런데 비행 한 지 몇 개월 안 되어 이젠 ‘그러려니’가 안 되는 거다. 남의 사진은 왜 찍으며,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거고, 왜 옆사람이 원하는 걸 자기도 꼭 가져야 하는지. 그래도 초심을 기억하고, 세상엔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지. 포용은 못한다 쳐도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절해야겠다.


눈 마주치며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로, 떠올리면 기분 좋은 날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거. 사소하지만 가치가 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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