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아티스트, 뱅크시 전시회 가다

오클랜드에서 열린 세계 순회 전시회 관람

by 오클랜드방랑자
KakaoTalk_20250804_083723070.jpg 오클랜드 뱅크시 전시회장.


지난 주말 뱅크시 전시회를 보러 시티 나들이에 나섰다. ‘The Art of Banksy’. 세계 최대 규모의 뱅크시 작품 컬렉션이 이곳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도 펼쳐졌다. 오클랜드 전에 전 세계 18개 도시를 순회해 15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화제의 전시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2년간의 전시를 마치고 이곳 오클랜드에 상륙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오클랜드 도심 아오테아 센터에서 지난 7월 7일부터 한 달간 진행됐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얼굴 없는,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아티스트의 대량의 진품을 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날/시간을 지정하지 않은 any day ticket을 산 탓에 전시 기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다가, 이날(8월 3일)이 전시 마지막 날이라는 final alarm을 받고 부랴부랴 시티로 향했다. 참고로 뉴질랜드의 미술관, 아트페어 등 주요 전시회 입장료는 성인만 지불하면 된다. 동반 아이(보통 12세 이하)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키즈 친화적인,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다.


스텐실 기법의 판화, 프린트, 캔버스, 기록물, 조각 등 다양한 형태의 뱅크시 작품 150점이 선보였다. 모두 복제품이 아닌 뱅크시의 공식 인증 기관인 Pest Control이 확인한 진품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전시품이 많아 놀랐다.


“A regular 400ml can of paint will give you up to 50 A4 sized stencils. This means you can become incredibly famous/unpopular in a small town virtually overnight for approximately ten pounds.(일반적인 400ml 페인트 스프레이 한 통이면 A4 크기 스텐실을 최대 50장까지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약 10파운드만 있으면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나게 유명해지거나 미움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BANKSY


뱅크시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가 전시회장 입구에 붙었다. 수천수억의 비싼 작품이 고고하게 거래되는, 예술이 곧 자본(권력)이 된 시대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뱅크시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미술가가 ‘한 땀 한 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낸 작품의 가치를 ‘공장식 대량 생산’으로 뭉개버렸던 앤디 워홀의 당시 그 저항이, 그 자체가 자본(권력)이 돼 버린 지금, 뱅크시는 스스로 자본(권력)이 되지 않으려 얼굴을 가리고, 게릴라 식으로 그라피티를 하며(공권력에 맞서며), 파괴적 퍼포먼스(고가에 낙찰된 소더비 경매작을 찢어버리는)를 벌이고 있다. 엄청난 유명세를 타며 새로운 미술 권력이 된 스스로를 부정하기를 반복하는 이 아이러니의 미술가는 21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아티스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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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반자본의 뱅크시.


전시는 전쟁 자본 등 힘 있는 것들에 대한 조롱, 풍자로 가득하다. Wrong War, No(war) 등 값싼 골판지에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 넣은 소녀나 악마, 베트남전 미공군기의 모습, 미공군기에 리본을 달며 ‘Have a nice day’를 외치는 작품은 강자의 질서 잡기가 우아하고 이상적인 대의의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권력만을 위해 마구 휘둘러대는 하찮은 폭력일 뿐이라는 뜻을 전한다.


KakaoTalk_20250804_083939577.jpg 'Love is in the bin'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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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로 표현한 영국.


견고한 아성의 디즈니랜드를 비튼 디즈멀랜드(Dismal land) 시리즈나 원숭이로 가득한 영국 의회 의사당 그림, 원숭이 얼굴을 한 영국 여왕, 그라피티 작가로서 경찰에 반감을 드러내는 작품 등은 유쾌하다. 뱅크시가 런던에서 처음 열었던 논쟁적 전시인 ‘Turf War’의 체게바라, 풍선과 소녀 등 유명 작품은 익숙하게 다가왔다. 2018년 소더비 경매 당시 100만 파운드(약 18억 원)에 낙찰된 경매작(풍선과 소녀)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도 창조적인 욕구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 파쇄하고 이에 더해 찢긴 작품을 ‘Love is in the Bin(사랑은 쓰레기통 안에)’으로 이름 지은 퍼포먼스는 기록물로 전시돼 당시의 논쟁을 되새기게 한다. 파쇄로 재탄생한 ‘Love is in the Bin’은 원경매가의 20배가 넘는 2000만 파운드에 재판매됐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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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코 토마토 수프와 케이티 모스.


전시 중후반부로 갈수록 ‘소비로서의 예술’이 강조되는데, 가령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쇼핑백을 든 모습이라든가 쇼핑 카트가 그려진 고대 벽화, ‘자본주의를 파괴하자’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쇼핑하려고 길게 줄을 선 소비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눈길을 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앤디 워홀의 작품(마릴린 먼로나 캠벨수프)을 패러디해(케이트 모스, 대형 마트인 테스코 토마토 수프로) ‘예술로서의 예술’이 아닌 ‘소비로서의 예술’ 강조한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 감독’이라는 내용의 한글 포스터도 같은 맥락이다.


KakaoTalk_20250804_093532215.jpg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포스터.


“We can't do anything to change the world until capitalism crumbles. In the meantime we should all go shopping to console ourselves.(우리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때까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동안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쇼핑이나 하자)” -BANKSY


전시회 끄트머리의 이 문구를 읽으며 출구로 나오니 굿즈샵이 기다렸다. ‘그래, 쇼핑이나 하자’며 ‘풍선과 소녀’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비싸게 샀다. ‘예술을 즐기기는 개뿔! 나는 속물이다.’ 이런 마음으로! ‘소비로서의 예술’을 비판한다더니 관람객에게 ‘소비로서의 예술’을 실행시키는 뱅크시, 역시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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