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에 관하여

호주 반이민 시위를 보며 뉴질랜드 다양성 교육을 생각하다

by 오클랜드방랑자
뉴질랜드는 마오리어로 'Aotearoa'라고 하는데 '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라는 뜻이다.


최근 호주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반이민 시위 ‘자국민 우선’ 집회가 논란이 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백호주의의 나라답게 “이민자는 나가라”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그런 도중에 시위대를 향한 한 호주 원주민 애버러진(Aborigine)의 반격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주민은 너희(영국에서 온 백인)다. 여기는 우리 땅이었고 이주해 온 너희들이 함부로 땅을 뺏은 것 아니냐. 이주민 보고 나가라고 할 거면 너희들이 먼저 나가라”는 일갈이었다.

영국의 식민지화 이후 호주는 원주민을 학살하고 강제 이주를 시키는 등 말살 정책을 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다. 1900~1972년 약 10만 명의 애버러진 아이를 백인 가정으로 강제 입양해 가족과 분리시킨 뒤 원주민 정체성을 지워버린 사건이다.


같은 영국의 식민지화 과정을 거쳤지만 바로 옆 뉴질랜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뉴질랜드는 말살 대신 동화, 공존을 선택했다.

매년 2월 6일은 ‘와이탕이 데이(Waitangi Day)’로 뉴질랜드 국경일이다(이번 연도 개학 첫 주부터 쉬길래 무슨 날인가 싶어서 알아보니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1840년 영국 정부와 마오리족 추장들 사이에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을 기념하는 날이다. 식민지화 과정에서 무력 충돌 위협이 커지자 주권을 영국에 넘기는(주권 해석 부분을 두고 아직 논란은 있다) 대신 마오리족은 안위를 보전받는 내용의,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공존을 강조한 이 문서로 뉴질랜드는 그 자체가 ‘다양성의 나라’가 됐다.


애버러진 문화를 말살한 호주 대신 뉴질랜드는 마오리족 문화를 이 나라의 뿌리로 인식하고 잇고자 노력한다. 학교에서는 마오리어를 배우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할애한다. 마오리어 수업이 영어 배우기에도 모자란 유학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시간일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다양성을 몸소 체험한다는 점에서는 귀중한 기회일 수 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마오리어 시간을 즐긴다. 마오리어의 발음이 특히 재미있다고 한다. 다만 마오리어 문자는 따로 없어 알파벳을 차용한다.


학교 교육에서도 마오리 문화를 배우는 시간이 많다. 매 학기 마지막 날은 무비데이로 영화를 한 편씩 보는데, 지난 1학기 아이들 학교는 ‘모아나’를 봤다. 모아나는 마오리족 문화를 반영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1학기 reading 수업 때는 모아나 책도 주요 교재로 사용됐다. 뉴질랜드의 뿌리를 배우는 시간이라는 설명이었다.

2학기 학부모와 함께하는 공개수업 때는 뉴질랜드 공휴일 ‘마타리키 데이(Matariki Day, 6월 20일)’를 앞두고 마오리족 전통의 위빙(특정 패턴으로 직물을 짜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천 대신 종이를 활용해 패턴을 짜는 아트 클래스였다. 마타리키 데이는 마오리족의 새해,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이다. 학부모에게도 공개되는 총회(school assembly) 때는 전교생이 마오리어로 합창한다.


도서관을 가도 마오리어 서적 코너가 방대하고, 지명 역시 오클랜드만 해도 원주민 지명이 절반은 되는 듯하다. 각종 안내판은 영어와 마오리어를 병기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도 양식이 Kia ora(안녕하세요)로 시작해 Ngā mihi(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로 끝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학교 구성원 자체가 다양해, 다양성 교육면에서 더 만족스럽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는 학생이 대략 키위(뉴질랜드 현지인)와 일부 아시안(한국 중국 일본) 정도로 나눠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독일 아랍에미리트 인도 필리핀 등 학생의 출신 국가가 다양했다(영국 남아공 등 영연방 출신이 특히 많다).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전통을 한 자리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뉴질랜드 교육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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