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군대 공연을 보러 가다
"먹어. 손 떨던데. 드셔. 추앙하는 거야"
"... 보자"
'나의 해방일지' 애청자 중, 손석"구씨"를 추앙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이른 아침, 평소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손석구의 활동일지를 눈여겨보고 있던 그녀가, 9년 만에 '나무 위의 군대'라는 연극으로 무대에 돌아온 다는 소식을 듣고 벼르고 벼르다가 그의 공연 티켓을 구하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2장이나!
그녀 주변에 수많은 손석구의 해바라기, 그러니까 손-바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손-바라기 중 그녀는 나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다. 내가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손석구의 입덕한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해방일지'의 보라고 적극 추천해 준 사람; 드라마 전개가 너무 느리다 싶으면, '구 씨'나온 장면들만 골라보라고 추천해 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내가 그녀의 손석구 사랑을 알고 있듯, 그녀도 내가 얼마나 그를 애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난 '나의 해방일지' 이전부터 손석구라는 배우를 무척이나 애정했다. 내가 그에 팬이 된 계기는 '멜로가 체질'이었다. 비록 드라마 시청률은 저조했으나, 극작에서 특별출연이었던 그가 어느 순간 메인 서브 캐릭터로 등급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비록 ’멜로가 체질' 이전에 나온 그의 드라마들을 찾아 정주행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의 영상클립들을 찾아보며 그의 팬심을 키워왔다.
고맙다며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를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머뭇됐다. 여름에는 유독 바빠지는 남편 때문이었다. 회사 일로 종종 주말에도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있었고, 그가 바쁜 날에는 내가 아이를 돌 봐야 했기 때문에, 그녀에 선뜻 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내가 계속 우물쭈물거리며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자, 그녀는 내가 인생에 단 한 번의 절호의 찬스를 놓이는 바보멍청이 같은 짓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호통(?) 치며 내게 말했다.
"야! 정신 차려! 이거 손석구라고!"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손석구가 내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객석을 채운 나와 나의 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중들은 여성들이었다. 대략 98프로가 여성들이었던 것 같다.
<나무 위의 군대 줄거리>
1945년 4월 일본의 어느 섬. 전쟁 경험이 풍부한 ‘상관’과 전쟁이 처음인 ‘신병’은 적군과 격렬한 총격전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숨어든다. 대의명분이 중요한 ‘상관’과 자신이 나고 자란 섬을 지키고자 입대한 ‘신병’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연락 수단도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대립한다. 낮에는 적군의 야영지를 감시하고, 밤에는 식량을 구하러 내려오는 생활을 하며 어느덧 나무 위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한 두 사람 앞에 편지가 놓인다. ‘전쟁은 이 년 전에 끝났습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출처: 나무 위의 군대. 소개문)
여러 공연은 구경해 봤어도 연극을 본 것은 이번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석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극을 보는 나의 몰입도는 최고였다.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한 이야기, 스토리부터 흥미로웠으며. 스테이지 중간에는 커다란 나무조형 하나로, 2년의 세월 그리고 여럿 공간의 변화를 연기하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순진무구한 신병의 역을 맡은 손석구의 소년 같은 연기는 완전 찰떡이었고.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인 상관역의 김용준 배우의 연기 호흡도 너무 좋았다. 최희서 배우의 내레이션은 연극에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병과 상관의 과거 여자들을 연기할 때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재밌었는데. 특히 '서방님!' 하던 그녀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10분.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다. 연극을 보고 있자니, 나도 언젠가 연극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청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드라마와 연극을 비교하자면. 드라마 작법을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드라마는 타 미디어에 비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나 집중력이 낮다는 것이었다. 공연을 보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티켓팅을 하는 노력. 공연장에 시간을 맞춰가는 노력. 개인 좌석이 있고. 시작 시, 스테이지가 어두워지고 배우들에게 조명이 비춘다. 집중하지 않으래야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현재 수십 개의 채널이 있고, 수많은 드라마들 (기존 방영하는 드라마 및 이전 제작된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추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드라마를 보거나, 아니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혹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드라마를 시청한다. 물론, 요즘에는 많이 변해서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나는 위의 내용과 공감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갈등이 필요하다. 갈등이 강할수록, 사람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갈등이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출생의 비밀? 백마 탄 왕자 이야기? 불륜? 범인찾기? 여러 가지 상황 위주에 갈등들을 뜻하는 것도 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 본질적인 갈등을 말하는 것 같다.
진실을 향한 갈망.
두려움을 넘는 용기.
존재의 대한 의문.
신념의 갈등.
인간 존엄성의 가치.
상황 아래 깔려있는, 어떻게 보면 기본적이고 흔하지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고민들을 말이다. <나무 위의 군대>가 뛰어나다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한 갈등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관이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수치심과 바꾸는 과정. 천진난만한 행동 뒤에 숨겨져 있었던 신병의 전쟁을 향한 진심. 마음 깊이 존재하는 갈등이다. <나무 위의 군대>처럼 나 또한 이벤트에 의존하는 드라마가 아닌,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선생님 말씀으로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다지만 (당연 무시할 수 없고), 시청률을 위해 내가 생각하는 막장드라마를 쓰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적어도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서는 그렇다.
나를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감사했고. 손석구 배우를 볼 수 있어 정말 감개무량했고.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손석구 배우님, 나중에 저 좋은 드라마 작가 되면, 제 드라마에도 꼭 출연해 주세요. 추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