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방송아카데미에 입성하다
O'PEN에서 떨어지고 난 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을 분석해 본 결과, 나에게 필요한 건 정확히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기본적으로 드라마 작법을 배우는 것
두 번째로, 나의 작품을 심도 있게 봐줄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학교.
5월 11일 남편과 상의 후 KBS 방송아카데미 - 드라마 작가 기초반에 등록했다.
그리고 드디어 7월, 아카데미 개강날이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공덕지하철역에 내려, 경의중앙선을 타고 '디지털 미디어 센터'역에 도착한 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너무 일찍 와 버렸....
‘그래도 늦는 거보다야 낮지. 미리 강의실 가서 글이나 써야겠다^^'생각하며 대합실로 향했다. 표지판에서 9번 출구를 찾았다.
어?
9번 출구가 어딨지?
왜 9번 출구가 안 보이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디지털 미디아 센터역, 9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래참조) '뭐, 일단 나가서 조금 돌아가면 되겠지'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6번 출구를 통해 역밖으로 나왔다.
역 정문에서 주차장도 보이고, 작은 건물도 보이고, 앞에 큰길도 보이는데... 아무리 두 리번 두리번거려도 역 반대편, 그러니까 기찻길을 가로질러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건널목도 없고. 육교도 없고. 이게 무슨 일인가 벙쪄있는데, 벽에 붙여있는 공고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도?
... 웬 지하도를 지나가란다.
내가 아침에 네이버 지도에서 가는 길을 찾아봤을 때, 분명 이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었는데... 이때부터 불안이 스멀스멀 엄습하기 시작했다. 워낙 길치라,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정말이지 매번 이렇게나 새삼스러울 수 없다.
네이버 지도를 확대해서 보니, 철도사이 얄팍한 길 하나가 보인다. 저기로구나.
일단 큰길로 나가, 얄팍한 길을 향해 미친 듯이 걷기 시작했다. 경보와 달리기 걸음걸의 그 중간.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지하도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나? 아니면, 택시를 잡아야 하나? 지금 택시가 잡힐까?
머리에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수색역을 조금 넘어가니 (당시 너무 당황해서, 지하도가 수색역을 지난 이후 나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천장이 아주 낮은 지하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비로 인해 지하도의 바닥이 무척이나 미끄러웠지만,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힘을 꽉 주고 바쁘게 걸었다. 그렇게 지하도 반대편으로 나오니, 두둥! MBC건물이 보였다. 비록, 내가 가야 할 곳은 KBS건물이었지만, 방송국 빌딩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일단 넘어는 왔는데... 이제부터는 시간문제다.
첫날에 지각?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난 늦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DMC의 오르막길을 무자비했고, 아침부터 의도치 않은 조깅과 함께 땀으로 2차 샤워를 하고 있자니, 급 짜증이 몰려왔다.
내 다리는 왜 이렇게 짜리 몽땅이고, DMC거리는 또 왜 이렇게 널찍널찍하고 가파른 건데?!
아침에 그 쌩 난리 부르스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교실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듯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예전 나였다면 강의실 중간 어디쯤 앉았겠지만, 한 자라도 더 잘 보고 듣고 싶은 마음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전반적으로 강의실 분의 기는 대학수업 분위기와 비슷했다. 기다란 책상에 듬성듬성 놓인 의자. 강의실 앞에서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 학생들의 사이 어색한 분위기까지.
첫 수업의 내용은 대체로 가볍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의 관한, 그리고 대본을 집필하는 것의 대한 이해 및 소개.
현실적인 연봉 이야기부터, 이상적인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격려.
당선작이 공모의 기준이 아니라는 일침.
글을 잘 쓴다고 좋은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조언.
그리고 '버티라'는 이야기.
직업을 가지고 버티세요.
버텨야 합니다.
버티는 겁니다.
버텨야 해요.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 다는 것.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그 직업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것. 어떻게든 그 직업을 가지고 버텨내야 한다는 것.
무슨 뜻인 줄 알면서도, 사전에서 '버티다'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버티다 [동사]
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다.
어떤 대상이 주변 상황에 움쩍 않고 든든히 자리 잡다.
주의 상황이 어려운 상태에도 굽히지 않고 맞서 견디어 내다.
(네이버 사전)
이전에는 드라마 작가의 가장 기본 된 덕목은 글을 잘 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더 기본적인, 더 중요한 덕목은 '버티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전에도 적은 바 있지만), 나는 공모전에 당선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백 명의 경쟁을 뚫고 당선이 된다면, 적어도 나에게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당선이 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병행하며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악착같이 버텼을지... 생각만 해도 퀭한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자택근무와 출근을 둘 다 해보니. 난 빨래와 청소기를 돌리며 자택근무를 하는 것보다, 지옥철을 겪으면서 출퇴근을 해도 사무실 데스크에 앉아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한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일을 그만둘 거라 말하면서도, 나는 내심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 아니 그만 둘 수 없을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정수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소수 금액이라 해도 꾸준히 들어오는 돈이 주는 안정감은 어마어마 하다. 그리고 혼자 였을때보다 가족이 생기니 돈의 대한 책임감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물론 40의 나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다 끌어안고 가야 되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강의가 끝난 뒤,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강의실 앞으로 불러 소개해주는 시간을 가지셨다.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부르실 때마다, 이름 뒤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달아주셨다. 누군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소리 내어 불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계실까? 그래서 더 특별했고, 그래서 더 설렜다.
*9번 출구로는 공항철도를 타고 와야지만 나와야지만 갈 수 있다. 예전 경의중앙선을 타고 DMC를 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뇌의 가출로 인해) 무이식적으로 경의중앙선을 타버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