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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19. 2023

1018 두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프니까, 합평이다.


내 눈에는 '대상'을 받고도 남을 나의 대본!

그 대본에서 문제들을 찾아내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리가 합평자리이다.

그래서 합평은 아프다. 아프지 않을 수가!

그리고 나의 합평은 아팠다.

조금 많이 아팠다.


호평이 아닌 혹평.

'호평'과 '혹평'이 받침 하나 차이로 뜻이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듯, 대본 또한 선정한 아이템 한 끗 차이로 호평 또는 혹평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의 대본은 "호"가 아닌 "혹"이었다. 선생님이 제기한 여러 문제점/방향성에 대해, 의견차이는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선생님의 지적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1 어렵고 복잡한 스토리는 소설에게 양보하자.

선생님께서 수업 중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설을 쓰면 안 됩니다"라는 것이다. 작가들이 너무 긴 지문을 쓰는 것, 추상적인 지문을 쓰는 것에 대한 비판하실 때, 자주 나오던 레퍼토리였는데. 이 말을 스토리 자체도 포함된다는 것을 이번 합평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소설의 장점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 많다는 것. 이야기를 통찰하는 주제가 이야기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아니다! 여백이 많으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7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기에,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단막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을 따라가지 않고 주제를 따라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주인공의 내면의 갈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공 내면에 자라 잡은 갈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브캐릭터들이 각자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출하며.... 뭐라는 거야? 그렇다. 정확이 이 반응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해가 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내 앞에 앉쳐놓고 1시간 주절주절해도 설명해도 가능할까 말까 한 것을 드라마화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미친 짓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내 친구 한 명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냥 이야기를 쓰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럼 난 도대체 뭘 쓴 걸까?) 쉽게 말해, 내 이야기는 그냥 너무 어려웠다. 드라마 대본보다는 소설이 더 잘 어울리는 글과 주제였던 것이다. 실제로 지문도 소설같이 썼다는 평을 받았으니. 난, 대본을 썼다기보다 소설 초고 썼다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그냥 대본을 써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2 캐릭터의 고뇌는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는다.

나는 내면의 갈등을 쓰고 싶었다. 아니, 오직 내면의 갈등만 쓰려고 했다. 내면의 갈등의 핵심에는 흔들리는 마음이다. 생각해 보면 내면의 갈등은 굳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서도 캐릭터는 고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소파에 앉아 70분 동안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고뇌하는 인물을 드라마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난 이 너무 나도 당연한 사실을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 깨닫지 못했던 걸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깨달았던 것 같다. 왜냐면 이 글을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7월 26일에 집필을 시작해 9월 20일에 끝냈으니, 이번 단막을 쓰는데 총 56일이 걸렸다. 첫 번째 단막을 집필하는데 (시놉과 대본 포함) 총 13일이 걸린 것에 비해, 엄청나게 차이나는 속도다. 시놉부터가 고비였다. 시놉을 쓰는데만 10일이 걸렸다. 시놉을 완성하고 나서는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 쓰면서도 진저리가 났다. 심지어 대본은 30장을 겨우 채웠다. 그럼 이 대본을 쓴 것을 후회하는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정말 쓰고 싶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써야만 해야 되는 글이었다. 하지만, 만약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글을 집필하게 된다면, 캐릭터의 고뇌를 조금 더 단순하고 직설적이게 풀어내는 방식을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할 것, 사수할 것

선생님은 베테랑이시고, 나는 맨땅에 헤딩하다 애꿎은 이마만 찢어먹은 초짜 중에 초짜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의 조언을 모두 다 수렴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어찌 됐든, 이 글의 총책임자는 결국 나이고 글의 대한 마지막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 고민 없이 삭제해 버렸다.

대본의 많은 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작업을 하다 저장을 안 해서 저장물이 날아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일이다. 합평 이후, 대본의 40% 를 날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고친 것이 아니라, 삭제한 것이다) 가뜩이나 페이지수도 간신히 채웠는데 40% 로가 날아가버리니, 당연히 나의 대본은 공모전 분량 미달이 되었다. (어차피 KBS 최종심 당선이 되지 않았으니 상관없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며 수정은 했지만, 결국 아쉬운 29페이지로 마무리했다. 오늘 수정을 마쳤으니, JTBC공모전까지는 이 대본을 손대지 않을 생각이다.


#2 작가의 자존심을 사수하다

글을 쓸 때.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주제라던가, 캐릭터의 서사, 작품의 주제 의식 등 말이다. 공모전에 낙방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난 그것들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나의 이야기의 방향성이었다. 나의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남편의 불륜을 의심케 하는 여러 정황들을 포착하며 고뇌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에 마지막까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주지 않는다. 선생님께서는 그냥 심플하게 나의 이야기를 분륜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있는 지정된 내연녀(?)가 아이가 있는 설정을 보시고, 주인공 남편의 아이로 만들면 어떻게냐고 조언하셨다. 그는 이유로 분륜 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이야기의 진도를 수월하게 뺄 수 있는 점 그리고 시청자들의 흥미를 잡기에는 불륜만 한 게 없다는 점들을 뽑았다.


난 고민했다. 나의 이야기에 진짜 분륜 을 넣어서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다면, 나는 분륜 이라는 요소를 이 이야기에 넣을 것인가? 하지만 생각하면 생갈할수록, 죽어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모전에서 낙방하면 낙방했지. 망한 글을 심폐소생시켜 보자고 이야기의 주제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이것저것 때려 넣는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이야기는 무덤에 묻고 새로운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분륜? 쓸 거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쓰는 거다. 누구에게는 쓸데없는 고집이겠지만, 이것은 작가로서 나의 마지막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인 거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사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포기하고 사수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것 말이다.


드라마 작가는 사람들이 시청하기에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상으로 찍을 수 있는 글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아직 갈 길이 엄청 멀지만, 그래도 이제 좀 배웠으니. 3번째 단막이야기를 좀 더 재밌고 쉽기를! 잘 써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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