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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n 17. 2023

1년차_0609 이번 주부터 출근합니다.

다크서클을 가릴 컨실러가 없다.


작년 9월 말 전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 계획은 출산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아직 한국에 있다고 하니 다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며 일자리를 제안해 주셨다. 당시 아이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서, 1시까지 하교였기 때문에 자택근무하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지만, 일, 육아, 살림 그리고 글쓰기를 병행할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스러웠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직업 특성상 성수기, 그러니까 바쁠 때는 정말 토 나올 정도로 바빴다. 말이 20시간 근무였지 정말 바쁠 때는 그의 두 배 40시간 정도 일을 할 생각으로 임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직원이 그랬다. 원장님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밤을 새우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들으면 최악의 직장 같지만 아이의 관련된 일이라면 눈치 보지 않고 일을 뺄 수 있고, 필요할 때 재택이 가능하고, 비수기 때는 거의 일이 없다시피 하니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꾀나 이상적인 직업이었다. 위의 부분만 읽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꼭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일을 시작하는 건 힘들었다. 다시 작년 9월 말로 돌아가자면, 아이가 아무리 학교를 간다 한들 4시간이었고, 가장 바쁜 시기가 12월, 1월인데 아이는 방학이고 더구나 공모전 또한 1월부터 시작이니, 도대체 얼마나 잠을 줄여아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월, 11월에는 최대한 공모전에 제출한 시나리오와 대본들을 완성하는데 집중했고, 그리고 11월 말 무렵 제출가능한 작품을 완성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몇 개월 뒤 읽어보았을 때는 여럿 어이없는 실수들을 보며 ’ 망했다 ‘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긴 했지만...)


그리고 정말 12월이 시작되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전에도 대본을 쓰느라 잠을 샜는데, 12월 그리고 1월 내내 잠을 못 자니 이 정도면 쓰러지지 않을까 싶더라. 온갖 카페인을 때려 부어도, 밤에 아이를 재우러 침대에 누우면 정말 가끔 뇌의 휴즈가 끊긴 것처럼 기억이 끊겼다. 그럴 때면, 남편이 잠이 들기 전 나를 깨우고, 난 자정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수기가 왔다. 심지어 3월부터 아이가 방과 후 프로그램에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생겼고, 아무래도 계속 자택근무만 하기에는 일에 한계가 있어 일주일 두 번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협의했다. 예정대로였다면 첫 출근은 6월 1일, 목요일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얘기했듯이 아이가 아팠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월요일. 출근 전 테니스 레슨이 있어, 남편에게 아이의 등교를 맡긴 뒤, 일을 끝내고 재빠르게 얼굴에 분칠을 하던 찰나 학교에 아이를 대려다 주러 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잠깐만, 선생님 바꿔줄게."


"어머니, 오늘 재량휴일인데..."


머리가 띵 하더라. 전업주부였던 나는 상관하지 않아도 되던 재량휴일. 당시에는 출근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던 시기라, 등원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답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봐주신다고 했지만, 재량휴일에는 급식이 나오지 않는 터라 도시락을 가져가야 됐었다.


"선생님, 그냥 다시 돌려보내주세요."


경황이 없어,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도 못 드렸다. 이 글을 빌려,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너무 죄송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회사에 연락했다. 너무 죄송하지만 출근을 못할 것 같아 화요일 나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나니, 화요일은 휴일이 아닌가?! 다시 죄송하지만, 수요일 대신출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정말 나의 뇌를 아이와 함께 출산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를 키우며 뇌가 가출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있을 때가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아이가 돌아오니, 불안했는지 손톱을 물어뜯어 피가 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서둘러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침 내내 대역죄인이 되어 모두 (선생님께만 빼고...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다) 사과하고, 월요일, 화요일 영혼까지 탈탈 털어 아이와 놀아주고 나니 수요일이 되었다.



드디어 정식 출근이다.


평소 기상보다 30분 이른 6시에 알람을 맞췄다. 샤워를 하고 나와 남편 최애의 간식인 계란을 삶고 있으니 아이가 어김없이 눈을 뜬다. 새벽 6시 반이다. 아이와 침대에 누워 얘기를 하고 아침을 차려주고, 화장을 시작했다. 아이는 이런 나의 모습이 신기한지 종알종알 말을 걸어온다. 아이의 질문에 답하라, 오랜만에 아이라이너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 아이의 가방도 챙긴다.


바쁘게 화장을 하는데 남편이 출근하기 위해 일어난다. 다행히 남편은 토스트기에 토스트만 넣어주면 밥을 잘 차려 먹기에, 다시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한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턱 까지 내려와 좀 커버를 하고 싶지만, 앗차. 컨실러 사는 것을 깜빡했다.


아이를 낳고 여태껏 제대로 화장을 했던 적이 있었나? 총 통틀어 2번. 지인 결혼식 때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때도 엄청 대충 했던 기억이…. 암튼, 기존에 있었던 화장품들이 너무 오래되어 다시 구매해야 했었는데, 컨실러를 깜빡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덜 피곤하게 보이는 건 포기한다. 이와 중 아이는 다 먹었다며 양치하자고 한다. 양치 후에는 옷을 고르고 갈아입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문제집을 풀자고 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아침에 문제집을 풀고 학교를 간다. 그래야 오후에 자기가 좋아하는 포켓몬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침에 문제집을 풀고 학교에 가는 아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내 코가 석자다. ‘문제집은 학교 갔다 와서 풀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좋은 습관을 무너트리는 나쁜 엄마가 될까 두려워 아이가 문제집을 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8시 45분, 어찌어찌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향한다. 아이를 9시까지 등교시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지하철. 그렇게 회사에 도착했다.


4년 4개월 만에 출근이다.


예전에는 4년 4개월이라 하면 엄청 긴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시간에 무감각해져서 그런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긴장은 되더라. 너무 오래간만에 출근이라 언제 어디서 실수할까 두려웠고, 사무실에 새로운 사람들과는 어색했고, 전에 알던 사람들과는 없지 않게 거리감이 있었다. 그리고 추웠다. 집에서는 찜통이 아니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선풍기로 버티는지라, 에어컨을 빵빵 트는 사무실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3시 일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짐을 챙겨 바쁜 발걸음으로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뒤로하고, 아이와 놀이 터도 가고 도서관도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에드빌 한 알을 먹고 8시 남짓 넘은 시간 아이를 재우며 같이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일어났다.


원래는 KT공모전에 내야 될 대본 작업을 해야 되는데, 도저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제 글을 쓰지 않은지도 거의 4주가 다 되어간다. 솔직히 바쁜 것도 있지만 내 작업 컴퓨터를 열면, 수정지옥이 시작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6월 15일이 마감이다. 1편에서 3편까지는 준비되어 있지만, 4화는 아직 수정도 작업도 필요하다.


육아. 살림. 직장. 글쓰기.


다 멋지게 해내고 싶지만… 육아면 육아, 살림이면 살림, 직장이면 직장, 글쓰기면 글쓰기.


그냥 딱 한 번에 하나씩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이야기의 맥락 상, 이 이야기가 먼저 올라갔어야 하는데, 계란 해프닝 이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제정신 찾아요”를 먼저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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