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같았지만 샤넬은 아니었던 아이유의 핑크 가디건
이상순을 만난 자리에서 보여준 아이유의 착장을 보며 한동안 화면을 넘기지 못했다. 대군부인 홍보차 나선 모습이었는데, 전체적으로 힘을 과하게 주지 않으면서도 또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날의 스타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단연 아이유 핑크가디건이었다. 조용히 눈에 들어오는데도 묘하게 오래 남는 옷이 있었다면, 딱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샤넬 특유의 클래식한 결이 스쳤다. 단정하게 정리된 실루엣과 은근한 고급스러움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샤넬이 아니라 셀프 포트레이트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익숙한 분위기를 닮았지만 그대로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부드럽고 산뜻한 쪽으로 흐르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유 핑크가디건의 색이 참 좋았다. 핑크라는 이름만 들으면 자칫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 옷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얼굴빛을 은은하게 밝혀주면서도 차분한 인상을 남기는 톤이었다. 덕분에 전체 스타일이 사랑스럽게 흐르면서도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화사함과 단정함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럴 때 늘 생각하게 된다. 결국 오래 기억에 남는 옷은 유난히 화려한 옷보다 사람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옷이라는 걸. 아이유 핑크가디건도 그랬다. 옷이 먼저 튀어나오기보다, 입은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를 한 번 더 부드럽게 감싸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따라 입어보고 싶어졌다. 특별한 날을 위해서라기보다, 평소의 나를 조금 더 정돈된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날에 꺼내 입고 싶은 옷처럼 보였다.
데님과 함께하면 너무 힘주지 않은 데일리한 느낌으로 입기 좋을 것 같고, 스커트와 매치하면 한층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살아날 것 같았다. 슬랙스와도 잘 어울릴 테니 생각보다 활용 범위가 넓어 보였다. 이런 점에서도 아이유 핑크가디건은 보기 좋은 옷에 머무르지 않았다. 현실의 옷장 안으로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옷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한 벌의 옷이 계절의 공기를 먼저 데려오기도 한다. 이번에 본 아이유 핑크가디건이 딱 그랬다. 봄의 환한 기운을 담고 있으면서도 들뜨지 않았고, 클래식한 무드를 품고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단정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화사하지만 과하지 않은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비슷한 마음으로 이 가디건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