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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May 16. 2022

중국에서 K-푸드가 환영 받는다고?


늘 그렇지만 외국계 기업을 겨냥한 중국의 생트집은 뜬금없이 시작된다.


오리온이 올해의 그 첫 번째 타깃이었다.


중국에서 매년 2천억 원 이상을 판매 중인 초코파이의 소비자가와 원재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오리온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던 러시아와 러시아의 우방인 중국, 이 두 나라를 콕 찍어 소비자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또한, 주요 재료 중 하나인 코코아 파우더를 중국 판매용에서만 건강에 해로운 코코아 버터 대체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리온은 이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 원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가 인상은 작년 9월의 일이며 전 세계적으로 일정한 인상이 있었고,


- 전 세계가 동일한 원재료를 사용하는데 중국어 성분표의 명칭을 잘못 번역하여 벌어진 촌극


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해명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물론, 이로 인해 초코파이의 매출뿐 아니라 오리온의 다른 제품들까지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은 말할 것 없다.


그리고 한 달 뒤,


삼양식품이 두 번째 타깃이 되었다.


삼양의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의 유통기한이 빌미가 된 것이다.


한국 내수용 제품은 6개월인 유통기한이 중국 수출용은 12개월로 배가 길다며,


“한국에서 팔다 남은 제품을 중국에 가져다 뿌리는 것 아니냐.”


라는 의혹이 삽시간에 인터넷을 달궜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틱톡에서도 현지화 되어 확산되며,


지난해 광군제(11월 11일)에만 1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던 제품인지라 중국인들의 분노 역시 폭발적이었다.


물론 이 제품의 수출용은 운송, 검역, 통관 기간 등을 고려해 산화 방지 처리를 한 탓에 국가에 상관없이 모두 12개월이다.


굴욕적이게도 삼양식품 대표가 주한 중국대사를 찾아가 해명하고서야 논란과 불매운동은 사그라들었다.


면담 중인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꽤 당혹스러운 이 뉴스를 보며 어떤 이들은 주먹을 움켜쥐고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분노를 토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처럼 반가운 소식도 없다.


중국에서 판매 중인 세계 각국의 수많은 식품 중에 유독 이 제품이 위협적이라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매출, 미약한 존재감을 지닌 제품에 반응하고 견제를 시도할 만큼 중국 시장이 한가로운 곳은 못 된다.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활약 중인 해외 브랜드 중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브랜드가 있기는 할까?


다시 말해, 이러한 부침은 작은 승전보이고 희망을 향한 그린라이트이기도 하다.


요즘 스타일로 K-푸드라 불리는 한국의 여러 식품 브랜드와 제품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


라면의 제왕 농심은 1996년에 중국에 진출하여 다양한 품목의 라면, 스낵과 생수를 상하이, 칭다오, 선양, 옌볜에서 생산•유통 중이다.


SPC삼립은 중국에서 빵 가게로 2,030억 원의 매출을,


풀무원은 고급진 두부를 팔아 61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만두 한 품목만 한 해 1,700억 원을,


목욕탕 우유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260억 원어치를 팔아 재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아래와 같이 단순화하여 이야기한다.


“중국에서 K-푸드는 환영받는다!”


그럴까? 과연 진짜 그런 걸까?


그런 반가운 일이 있는데 중국인들과 나만 몰랐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 일은 없기 때문에 모른 것이다.


이는 생각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반적이면서도 아주 큰 오해이다.


중요한 현실은 어느 중국인 하나 이 제품들을 먹고 즐기며 한국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오리온, 농심과 같은 중국 내 생산•유통 기업의 식품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외국계 기업의 제품인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위의 사례와 같은 경제적 bullying에서 이 식품들이 한국 제품임을 강조하는 지랄발광이 동반된다.


“사드 국가 한국의 제품!”


“중국 시장을 ATM으로 여기는 기업!”


물론 이 인기의 시작은 소위 K-푸드의 후광 덕이었을 수 있다.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며 치맥을 열망하고, ‘런닝맨’을 보며 땀 빼게 만드는 매운 라면에 군침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최대한 커져봤자 ‘시식’에서 끝이 난다.


이 제품들이 이들의 일상에 자리하고 지속적인 먹거리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제품들이 성공한 먹거리로 중국에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그 첫 번째,

일관된 독창성


라면 종주국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은 닭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삼는다.


당연히 가장 맛있는 일본 인스턴트 라면은 닭고기 국물의 라면이다.


맵지도 않다.


중국의 라면은 중국인의 기호를 감안해 돼지고기나 소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쓴다.


물론 초창기 한국의 라면 역시 맵지 않은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삼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인의 소고깃국 사랑을 읽어낸 농심(당시, 롯데공업)의 소고기 라면에서부터 라면 국물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게 무려 1970년의 일이다.


매운맛 라면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86년이 되어서야 ‘신라면’으로 출시 되었다.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매운 소고기 국물 인스턴트 라면’은,


매운맛 36년,


소고기 육수 52년


이라는 시간을 담고 있다.



하다못해 짜장라면조차도 소고기 육수와 함께 5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농심의 라면은 시작부터 오지게 독창적이었고, 징하게 일관되어 왔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일관’과 ‘독창’이라는 단어가 사뭇 어울릴 법하지 않은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원인 그 두 번째,

대체 불가능한 품질


중년의 한국인 누구나 애착하는 항아리 용기의 바나나맛 우유는 향년 48세이다.


중국에서 판매 중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과거,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짜장면과 비등한 존재감을 뽐내던 이 제품은 중간에 잠시 세월 속으로 묻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편의점 진열대의 중앙을 다시 차지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해외로까지 진출하여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료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앞서 말한 일관된 독창성 덕분일까?


초코 우유도 아니고, 두유도 아니고, 항아리 모양 용기에 넣은 바나나맛 우유라니!


기가 막히게 독창적이다.


48년 동안 그 맛이 변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일관적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만 성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정도의 독창성은 카피가 가능하다.


그리고 일관되게 지켜오던 맛까지 카피가 가능하다면 그걸로 끝장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따라올 수 없는 맛, 바로 품질이 가장 기본인 동시에 핵심인 것이다.


짝퉁의 파라다이스 중국이다.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가 중국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유사 제품, 모조품이 오리지널의 반에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쏟아져 나왔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중국산 짝퉁 바나나맛 우유


대부분의 수입 제품들이 그러하듯, 빙그레의 제품 역시 기억조차 못 할 저 너머에서 파묻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틀렸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매출은 매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왜일까?


중국이 콘셉트과 껍데기는 베낄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 맛과 향, 목 넘김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었나 보다.


짝퉁을 마셔본 소비자들은 그제서야 빙그레 제품의 비싼 가격을 납득하는 눈치였다.


대체 불가한 오리지널리티가 존재감을 뿌리박는 순간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중국 시장에서 생존한 한국 식품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조건의 존재 여부를 굳이 중국까지 들고 와 시험해볼 이유는 없다.


만약 이미 갖추었다면 진작부터 한국에서 탄탄한 입지와 부동의 팬덤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러하지 못하다면 내 나라에 차분히 엉덩이 붙이고 연구와 개발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한국 기업이 자국 시장에서 같은 민족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마음을 설득하지 못하는데,


중국 시장 진출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더불어 제발 부탁건대, 그놈의 ‘제품 현지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KFC와 맥도날드도 하는 현지화, 코카콜라도 하는 현지화니 나도 좀 해야겠다는 소리 역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중국 현지화된 KFC와 맥도날드의 메뉴들


중국어 가능한 직원 몇 분 모시고 코트라에서 정리한 트렌드 보고서에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제품 현지화한다 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이미 한국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면 그냥 그 제품 그대로 내놓으면 된다.


이만한 조건이 되는 제품이라면 14억 중국인 중 분명 적지 않은 이들이 입맛을 다실 것이다.


14억 인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고 주머니 사정까지 맞춰보겠다는 오만한 발상은 주접에 가까운 욕심이다.


중국에 진출한 맥도날드가 현지화를 시도하는 데까지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그 현지화는 맥도날드가 한 것이 아니라 맥도날드를 사랑하게 된 소비자들이 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자금성의 스타벅스


현지의 소비자가 나의 제품을 애정하고 가까이하며 그들에 맞게 변화시킬 때까지 겸허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성급한 욕심에 제대로 이해 못한 중국인 취향과 중국 시장에 맞춰 제품을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이 패착이고 나락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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