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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May 19. 2022

망가진 K-뷰티, 과연 중국 때문인가?


오늘의 이야기는 많이 슬프고 또 아픈 이야기이다.  
물론 이야기 속,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쏟아내게 되는 것이 비명이건,
고함이 되었건,
마음이 꽤나 시끄러울 수 있으니 우선 양해를 구한다.


소위 K-뷰티라 불리는 한국 화장품 산업은 몇 년째 고전 중이다.


‘K-뷰티의 성지’, 명동의 몰락


심지어 최근 언론 기사에는 올 년 상반기, 중국 시장의 침체로 화장품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며 곡소리가 가득하다.


물론 그 기사 속 주인공은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 일색이다.


LG생활건강은 2022년 1분기 매출 1조 6,450억 원에 영업이익 1,75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2%, -52.6%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동일 기간, 매출 1조 2,628억 원, 영업이익 1,71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0%, -13.4%를 기록했다.


물론 작년에 비해 역성장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곡소리 급 엄살을 떨 정도로 실적이 참혹하지는 않다.


이 엄살에서 주담(기업 IR 담당)이 전하고 싶었던 핵심은 아래와 같다.


- 중국 실적 제외 시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4%, 0.7% 감소 : LG생활건강


- 중국 의존도가 70%에 달하는데 1분기 중국 매출 중 10% 감소 : 아모레퍼시픽


들리는가? 그들의 변명이.


“저희 어닝 쇼크에 많이들 놀라셨죠?

이 모든 게 다 중국, 이 잡놈의 시장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제로 코로나다 뭐다 하면서 시장 걸어 잠그고... 다들 뉴스 보셔서 아시죠?

저희가 중국 시장 버리고 다른 시장 잡아서 주가 다시 끌어올릴 테니 걱정들 붙들어 매세요!”


오늘도 버티는 주담의 애환이 절절히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공감하려 애를 써도 내 눈에는 뭐가 어렵고, 뭐가 그리 힘들다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심지어 영업이익률이 ‘10%’나 되면서 말이다.


물론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30%가 넘는다.


최근 들어 벅벅 긴다는 삼성전자도 18.5%에 달한다.


하지만 말이다,


K-뷰티로 퉁쳐놓은 한국 내 화장품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10%는 은혜롭기까지 하다.


그나마 이 두 대기업은 자체 R&D 역량과 생산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망가진 업종에서 10%를 지켜낸 것이라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업계 전반의 다른 기업들은 어떨까?


한국에는 1만 여개가 넘는 화장품 제조•판매업자가 있다.


그리고 2019년을 마지막으로 조사된 통계에 따르면, 등록된 화장품 기업의 수만도 648개에 이른다.


이 중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수는 총 13개이다.


나머지 635개 기업이 중소, 벤처 기업인 것이다.


그렇다. 98%가 중소, 벤처 기업이라는 소리다.


1만여 제조•판매업자까지 포함하면 대기업, 중견 기업은 소수점 저 너머에 있다.


공룡도 힘들다고 앓는 이 상황에서 과연 이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1만여 개다.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더라도 이들의 어려움과 고통은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간 업계에서는 신음소리가 난무했는데, 분기별, 연도별로 정부 기관, 증권사, 언론, 주담들은 뜬금없는 축포를 쏘아댔다.


하기야, 그간의 발표된 숫자는 분명 샴페인을 채울 만했다.


2021년 화장품 수출액 및 수출 상위권 국가


2017년부터의 통계만 봐도 2021년까지의 화장품 수출은 매해 증가하고 있었고, 대 중국 수출 실적은 기록을 경신 중이다.


‘매해 증가하는 수출액,

매해 기록 경신 중인 대 중국 수출.’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화장품 업계가 오늘내일한다는 것인지 업계 밖 사람들은 아리송할 뿐이다.


알고 보면 사실 단순한 이유다.


화장품 업계가 수출 규모의 기록적 증가와 상반되게 어려워진 까닭은,


‘영업이익’


에 있다.


대기업의 경우, 그나마 10%의 영업이익을 지킬 수 있었지만, 수없이 불어난 한국 브랜드끼리의 과당경쟁으로 박리를 감수해야 했던 나머지 98% 기업의 경우, 두 자릿수 영업이익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영업이익을 고수하면 매출이 올라오지 않는다.


진퇴양난이다.


2015년 이전까지, 신규 제품 출시 후 어느 정도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면 중국 시장은 어김없이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때만 해도 분명 마진은 풍족했고, 이렇게 남겨도 되는가 마음에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대박’의 영광이 무르익기도 전에 유사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분도 똑같고, 포장도 비슷하고, 콘셉트는 완전히 동일하다.


심지어 ‘Made in Korea’ 제품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치고 들어오는 후발주자와 챔피언 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원조의 대응은 비극적이게도 ‘가격 인하’로 귀결된다.


그렇게 네이처리퍼블릭은 아직도 ‘알로에 수딩젤’을 3천 원에 팔고 있고, 메디힐은 ‘NMF 마스크팩’을 장당 500원에 팔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 품목들이 이 기업들의 매출에 80~90%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팔면 팔수록 손해’지만 살아남기 위해 멈추지 못하고 어제와 똑같은 돌을 굴리고 또 굴려야 하는 한국 화장품 회사들의 시지프스와도 같은 운명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시지프스


그럼, 이 ‘야박한 영업이익’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정말 우리가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중국 시장 때문’일까?


첫 번째 원인,

ODM•OBM 모델의 성장과 과도한 의존


우선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형태의 정책, 제도, 산업으로 반영되었다.


하지만 정작 인구 감소와 선진국 진입의 현상인 베이비 버스트(출산율 급락)를 예측•반영 못한 이 근시안적 추세는 불행히도 아래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대학 입학 가능 자원 추계


이미 우리나라의 대학 입학 정원은 남아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은 넘쳐나는 대학을 졸업해, 보다 나은 인생을 영위할 수 있었는가?


불행히도 아래의 도표가 또 다른 결과로 기다리고 있었다.


대졸 이상 취업률 변화


결과는 더욱 나빠졌다.


대졸 취업 준비생들은 과거 고졸 취업 준비생만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적 증가와 질적 증가는 상관관계가 1도 없다.

심지어,

계획 없는 양적 증가는 질적 감소를 가져오며

내부 경쟁의 심화를 야기한다.‘


물론,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대학 졸업생 미래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기까지 한다.


주요 상위권 대학 졸업생 취업률 변화


단순한 논리지만 이 현상이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파고들어 스스로를 좀먹고 있다.


화장품 업계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화장품이 잘 팔린다고 하니 너도나도 이 업계로 골드러시를 시작하였다.


화공은 둘째치고 화장품이 뭔지도 모르는 자본들이 너도나도 이 업계에 뛰어들어 고민을 때리기 시작한다.


‘뭘 만들어 팔아야 하더라...’


그대여, 걱정 마시라.


한국에는 OEM(주문자 위탁생산)을 넘어 ODM(제조자 설계생산)과 OBM(제조자 브랜드 개발생산)으로 특화된 기업들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잘 팔릴 제품도 제조자가 제안해주고, 브랜드가 없으면 심지어 브랜드까지 만들어 준단다.


그리하여,


애완동물 입양하듯 집어 온 제품을 가지고 깊이는커녕 독창성도, 방향성도 없는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래서, 이 ODM•OBM 기업들이 각 브랜드마다 성공 비결을 제시했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제안한 제품 하나가 어쩌다 대박 나면 그 유사 제품을 다른 브랜드들에 제안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인 ‘Me too 제품’들로 고객사 제안을 돌려막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구분도 안가는 껍데기뿐인 브랜드, 거기에 하루하루 늘어나는 동종업계 경쟁자.


이들 모두, 대한민국 대졸 취준생과 다를 바 없는 Hell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금융계에 계신 분들 역시 이 사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어느 증권사 보고서 중 ODM•OBM 기업에 대해 예찬하지 않았던 것이 있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고 있는 당신이다.


누구를 위해서 그런단 말인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어떤 인더스트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제 살 파먹는 이 구조를 예찬한 이들의 지성 혹은 양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두 번째 원인,

편법 유통의 만연


MG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대중에게 아주 생소한 이 단어는 한국 면세점을 먹여 살리는 최대 고객 ‘기업형 구매자’를 칭한다.


면세점과 유통업계 사람들끼리만 쉬쉬하며 이야기하는지라 일반인들이 접할 길은 없다.


이 MG가 가진 바잉파워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SG로 불리는 ‘5천 달러 이상 구매자’ 따이공(혹은 따이꼬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천상계의 고객 되신다.


이들은 유통업계 최저 입고가에 각종 프로모션 비용 명목으로 다시 더 저렴해진 입고가의 면세점 물품을 창고에서 박스째 실어나간다.


그렇게 해외로 넘어간 물품들이 해외직구, 대행 구매 등의 딱지가 붙어 현지에서 대량으로 유통•판매되는 것이다.


당연히 일반 유통 대리상을 통해 넘어온 물건과 그 가격을 비교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게 우리나라 면세점 실적의 실체이다.


심지어 한 면세점은 전체 매출의 80%를 이 MG에 의존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물품 중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히 화장품이었다.


이것이 불법이냐고?


2019년, 어느 수줍은 용자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시전한 것으로 보이나, 그 기록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인 중


이렇게 해외에서, 특히 중국에서 유통되는 물건은 결국 현지의 유통 가격을 무너뜨리고 유통사 간의 박리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듯, 종국에 이 박리에 대한 압박은 먹이사슬의 끝에 있는 제조사•브랜드사로 고스란히 찾아왔다.


압박으로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공급가에 도달했을 때,


유통사는 더 이상 이 제품을 유통할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유통사들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비단 한 예일뿐, 너무도 많은 편법적 유통이 마약과도 같이 화장품 기업, 유통업체들을 정키로 만들었고 스스로를 나락으로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의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 브랜드의 부상’, ‘사드와 한한령’, ‘중국 소비자의 변심’,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까지.


하지만 장본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핑계와 변명들 이전부터 우리는 제 발로 깊숙한 늪 속에 들어와 있음을.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줬으니 힘차게 울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뺨을 부여잡고 여전히 징징거리는 것이 난 몹시 두렵다.


이따위의 반성 없는 오늘로 인해,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대한민국의 성공 사업이

동일한 늪으로 향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다.


우리가 이토록 반성 없이, 성찰 없이,


스스로를 계속 해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도무지 밝아질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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