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훈의 중국평론 Jun 02. 2022

한비자와 시진핑


천안문 사태가 있었던 젊고 붉은 유월이 되었다.
그래서 이 한 달간 드문드문,
작금의 중국 국정 운영 키워드 몇 개를 심도 있게 다뤄보기로 하였다.
고루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했다.
대신,
꼰대스럽고 재미없을 이 이야기들을
최대한 신랄하고 재미지게 풀어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과거 『동아비즈니스리뷰 제335호』를 통해
아주 살짝,
일부,
간략하게 다룬 적이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중첩되는 내용도 있을 수 있으니 해량하여 주시길 바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요즘 꽤나 핫하다.


정작 본인은 자주 보이지도 않는데 세계 각국의 언론이 디스패치급으로 여러 의혹과 스캔들을 보도하는 탓이다.


가볍게는 ‘건강이상 설’부터 험악하게는 ‘쿠데타 설’까지 아주 다양한 ‘썰’들이 난무하고 있다.


살짝 ‘바램’까지 섞여 있는 듯한 이 기사들에 누굴 나무랄 것은 없다.


글로벌하게 인심 잃은 것이야 그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니 말이다.


정치와 권력, 그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인류의 탄생 이후 쭉, 계속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일그러진 지성과 결합하면 민중을 가스라이팅 하기 위해 나름 쓸만한 정치적 도구들을 소환한다.


무솔리니나 히틀러급의 전체주의적 리더로 부각되는 시진핑 주석.


오늘은 만렙이 된 그의 철권통치 철학 중 대표적인 키워드 ‘의법치국(依法治國)’을 해부해보려 한다.


의법치국이란,


단어 그대로 법에 의거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뜻이다.


의법치국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2014년 제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a.k.a. 4중전회의)에서였다.


시진핑 정부의 치국 노선을 설명하는 총 4개의 이정표가 이때 선보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의법치국이었다.



의법치국은 뉴 페이스가 아니었다.


1997년부터 필요한 시기와 상황에서 이래저래,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방개혁 이후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치가 주인공이 된 것은 시진핑 주석에 의해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올드 페이스의 등장은 당시 상당히 센세이셔널했다.


하느님 아닌 공산당, 부모님 아닌 당서기인 중국에서 그간의 ‘당치(黨治)’를 버리고 ‘법치(法治)’를 선택했다는 것에 중국이 드디어 현대국가의 꼴을 제대로 갖추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도 샘솟았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심오했고 놀라울 정도로 교묘했다.


여하튼 인민과 세계가 무슨 기대를 했던, 그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니 의법치국 소환에 관해 당과 리더가 읊조린 꼰대 같은 명분은 스킵하고,


주둥이 저 아래에 깊숙이 자리한 속내를 바로 파고 들어가 보자.


1. 포퓰리즘 (Populism)


일차원적 의도는 시진핑 주석 리더십 강화를 위한 민중의 지지 기반 확보이다.


무산계급의 해방, 자본가와 권력가들이 쌓아놓은 적폐 말살을 악써 외쳐가며 일어선 중국 공산당이다.


근데 우선 살아남고 보자고 개방개혁을 하더니 갑자기 옆집 왕 씨가 부자가 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공무원인 뒷집 멍 씨랑 눈에 띄게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다.


분명 나보다 수입이 적은 공무원 멍 씨인데, 부자가 된 왕 씨의 차가 바뀔 때마다 덩달아 같이 차를 바꾼다.


누가 보면 1+1 행사하는 줄 알 지경이다.


아무리 못 배운 동네 사람들이지만, 너무 뻔히 보이는 이 관계와 거래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의 하찮은 권력과 꽌시에 짓눌려 아는 척조차 할 수 없다.


중국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권력이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이 거지 같은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액튼 경 (Lord Acton) -


그때였다.


인민의 눈에는 절대 나아질 것 같지 않던, 희망조차 없던 이 부패의 땅에 시진핑 국가 주석이 정의의 칼을 뽑아 들고 나타났다.


“호랑이(고위 관료)부터 파리(하위 관료)까지 부패한 씹새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싸그리 박멸하겠다!”


모든 부정부패 공무원을 법의 심판대 위에 올리겠다는 짜릿하고 웅장하면서도 액션 작렬하는 영웅의 등장이었다.



2. 차도살인(借刀殺人)


374만 명


인민의 히어로가 된 시진핑이 그간 잡아넣거나 낙마시킨 공산당 관료의 숫자다.


물론 변사또급의 탐관오리도 있었을 것이고,


좀도둑 같은 하급 공무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중,


시진핑의 정적이었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링지화 통일 선전부장 등도 싸그리 포함되었다.



인치(人治)와 당치가 사라진 중국,


그 빈자리에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의도와 흥분한 민심이 가늠쇠와 노리쇠가 되어 채워졌다.


법치는 방아쇠가 되어줬다.


교묘하고, 신속하고, 편리하게, 탕!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반부패 드라이브라는 숙청 대환장 파티는 정말 천재적이지 않을 수 없다.


3. 불로장생


Q : 법을 앞세웠는데, 법이 날 가로막으면?


A : 법을 바꾸면 된다.


“악법도 법”이라고 중얼대며 입술을 깨물고 독약을 들이켜는 소크라테스가 아닌 이상,


선 넘은 권력자가 독재자로 가는 길은 그렇게 열려있다.


그렇게 2018년 3월 11일, 시진핑 주석은 ‘국가 주석 3 연임 제한 조항’을 헌법에서 날려버린다.


장기 집권, 즉 독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더 이상 긴말이 필요 없다.


바로 이것이 ‘의법치국’의 정체이다.


어? 이거 사기 아니야? 법치라며!


여기서 당황하고 격노하면 안 된다.


그것은 순전히 당신이 아는 ‘법’과 의법치국의 ‘법’이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것임을 몰랐기 때문이니까.


사실 의법치국은 꽤 오랜 연식을 가지고 있는 요물에 가깝다.


그게 그러니까 기원전 3세기부터니까... 2천2백 년 정도 됐나보다.


한비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의 법가(法家) 사상이 의법치국의 원조 정도 된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에 좌표 찍고 겁나게 목표 달성에 매진하던 진시황.


그의 귀에 ‘이법치국(以法治國•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림)’이라는 마스터키를 들고 ‘부국강병’을 부르짖는 외침이 들려왔다.


법가와 한비자(韓非子)였다.



존재한 적 없는 강력한 전체주의,


눈 돌릴 틈 주지 않는 권력 집중형 군주통치,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적 방법론.


그것이 바로 한비자가 들고 나타난 법가의 통치 철학이다.


법가는 패도(覇道•무력과 권세 그리고 모략을 활용한 공포정치)를 올바른 통치의 수단으로 말했다.


성선설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 유가와 달리 법가는 성악설(性惡說사람은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순자의 윤리 사상)을 기초로 한다.


그렇기에 법가는 인간사회가 근본적으로 개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


‘백성은 노답이다.’


중앙집권적, 관료적인 공포정치, 상벌 정치를 통해 체계적으로 통치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다.


그곳에는 강력한 권력과 복종 외의 차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패도는 법(法), 술(術), 세(勢), 이 세 가지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백성을 지배하는 제도, 법(法)


은밀하게 법을 운용하는 술수, 술(術)


군주의 역량과 이를 따르는 세력, 세(勢)


당시 온 천지가 도(道)와 덕(德)만 떠들고 있는데 이리 화끈하고 과격한 군주론이 등장했으니...


진시황의 입에서 “my precious~“ 소리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중 우리는 법가의 ‘법’에 주목해보자.


눈치챘겠지만, 법가의 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두가 앞에서 평등해지고 공정해지는 그런 종류의 것’과는 완전 다른 물건으로 존재한다.


바로 ‘군주의 통치를 위한 파워 시스템’인 것이다.


권력



그리고,


‘의법치국’과 ‘이법치국’


교묘히 한 글자만 다른 이 대목에서 현대 중국의 정치 사상가들이 법가가 가진 전체주의적 냄새를 빼기 위해 나름 노력한 티가 물씬 나지 않는가?


하지만 한심할 정도로 너무 티가 나서 누가 감히 이 둘의 다름을 반박할 여지조차 없을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많은 학자가 ‘의법치국’을 legalism으로 해석하며 법률을 통한, 법률에 의한 국가 운영이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해석은 옳지 않다고 여기서 못 박아본다.


그 증거가 바로 시진핑 주석의 헌법 개정이고 기술이 제대로 들어간 반부패 정책일 것이다.



오늘은 ‘의법치국’의 민낯을 이렇게 까발겨봤다.


사족으로,


이러한 법가가 진시황의 진나라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까닭은 상당히 흥미롭다.


유가, 도가, 묵가의 장점들을 최대한 차용하여 완성된 법가였지만 그 힘과 파급력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법가의 통치 사상은 법가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주체의 성숙도, 완성도에 따라 상대를 굴복시킬 수도 있고, 주체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미완한 주체가 섣불리 뽑아 들었다가는 스스로 만든 법에 갇히고 성난 민심과 맞닥뜨리며 광장의 길로틴에 목을 얹을 수 있다.


그렇기에 법가의 통치 철학은 그 본모습을 숨기고 여러 사상 뒤에 숨어, 때에 따라 차용된 일부분들로 여러 정권에 활용되어 왔고 이렇게 본모습 그대로를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


부디 이것이 중국의 미래에 대한 스포일링이 되지 않기를 30년째 중국에 사는 자로써 진심을 담아 빌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 이혼율의 진실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