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한국인이야 중국인이야?”
이제 이 질문은 한국과 중국에서 낯설지 않다.
지금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한때 한중 양국은 한해 2만 쌍 이상의 부부를 배출하는 국제결혼의 견우와 직녀 같은 사이였다.
그리고 또 그들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로 수많은 아이가 태어났다.
이제 그 아이 중 일부는 장성한 성인이 되어 한국과 중국에서 두 나라의 미래를 핏속에 담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태어났을 즈음인 1993년 겨울 처음으로 베이징에 왔다.
그때 태어난 누군가는 한국인으로, 어느 누군가는 또 중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하고 자신의 가정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장하던 어느 날,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어 중국인이 분노할 때,
한국의 누군가가 인터넷 기사 아래 남겨놓은 이유 없는 혐중의 문구를 마주할 때,
그들은 마치 한중 국가대표의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 심정으로 불안하고 불편한 내적 갈등을 겪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로해줄, 아니 이해해줄 그 어떤 존재도 곁에 없는, 혼자만의 외로움 또한 함께했으리라.
한중 양국의 정부와 민간의 수많은 교류 속에서 과연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가깝다가 또 멀어지기도 하는 두 나라의 경제적, 외교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본인의 혈관에 흐르는 두 나라의 피를 나눌 수 있었을까?
이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특이하지 않다.
두 나라가 함께한 30년,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이들의 숙명과 고뇌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인들은 말이야…”, “중국인들 때문에…”로 시작되는 국적으로 일반화된 이 관념들이 이제 식상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사는 두 나라 모두 개성이 강한 정부를 가지고 있다.
지는 것을 못 견디고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민족성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잊고 살아온 정말 중요한 진실이 있다.
내 앞에 있는 이는 중국인, 한국인이기 이전에 내 앞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와는 다른, 다른 이들과도 다른 성격과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환경에 따른 문화와 습관을 지니고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늘 먹는 음식이 다르며, 격을 지키는 예의범절이 다르다.
보는 영화가 다르고, 읽는 책이 다르며, 듣는 음악 또한 다르다.
이것들은 내 앞의 그가 가진 유전적 성향과 결합하여 우리에게 ‘한 사람’을 만든다.
그에게 주어진 지금의 정부와 우리와의 외교관계가 아닌 이것들이 그 사람인 것이다.
30년의 시간, 한중 양국이 교류하며 눈부신 경제적 발전과 밀접한 외교적 왕래를 이룩해 냈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그나마 인기 좋은 한국 드라마, 작품성 높은 중국 영화, 양국의 유행가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애정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저 콘텐츠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여 체온을 느끼고 다름과 같음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단절된 우리를 풀어줄 두 나라의 용기가 필요하다.
2시간 거리의 30년 지기 사이, 한번 찾아가는데 왜 그리 서먹하게 비자가 필요할까?
역사 속 엉켜있는 뿌리를 가지고 많은 문화가 공통되는데, 왜 중국어와 한국어를 배우는 일이 수월치 않을까?
한국에 있는 30만 중국인, 중국에 있는 20만 한국인들은 얼마나 지내기 편하고 또 현지인들과 섞여 살 수 있을까?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온 아이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고 주변에 중국과 중국의 것을 얼마나 잘 알릴 수 있을까?
그 아이는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고 중국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까?
국민이 있기에 국가가 있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면,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곧 국가이고 내 울타리다.
두 나라가, 두 정부가 각각의 국민이 아닌, 두 국민 모두를 위해 고민하고 애써준다면 그 경계는 낮아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까워질 것이다.
자주 보고, 이야기 나누고, 삶을 함께한다면 그것만큼 한 가족이 되기에 좋은 것이 또 무엇이랴.
공과 사가 엄격히 구분되면 그것은 곧 남이다.
사적이고 격의 없어야 하는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는 양국 정부가 서로 간에 무엇인가를 만들고 쌓는 노력보다는 허물고 내려놓는 무위(無爲)의 자세가 필요하다.
21세기, 사람들은 의외로 지혜롭고 현명하며, 나눔과 평화를 사랑한다.
최소한 난, 규제와 담장이 사라진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에서 양국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낼 조화로운 미래를 믿는다.
잘 모르는 단체이기는 하지만 ‘한중 글로벌 협회’라는 곳과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뜻깊은 백일장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일장은 주제는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더더욱 긴밀한 한중 관계를 위한 제언’.
8월15일 한중 수교 30주년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업로드하고 그 다음날부터 중국기업에서 일을 시작한 나로서는 이토록 의미심장한 주제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물론 내 예상대로 결과는 별볼일 없었지만 그 글은 남았다.
나쁜 글이던 부족한 글이던 난 또 내 글을 이렇게 세상에 내놓는다.
※ 표지사진 : 한중 국가대표 커플 안재형과 자오즈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