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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Aug 15. 2022

quo vadis] 떠나는 자와 돌아오는 자

한중수교 30주년, 그 마지막 이야기


한중간 30년의 시간, 그중 20년을 우리는 중국 특수라는 경제적 축복 속에 살았다.


그리고 그 축복은 중국 따위가 내려준 것이 아니라 지금의 어르신, 우리의 부모 세대가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세우고, 돈키호테처럼 얼토당토않게 그 목표를 향해 질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 일류화’, ‘초일류기업’, ‘세계가 인정하는 제품’과 같은 당시 한국으로서는 ‘지구 정복’에 필적하는 원대한 목표와 그 목표를 향한 노력이 우리에게 ‘중국 시장 특수’라는 희한한 형태의 보상을 제공했다.


뉴런이 짧은 인간들은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스스로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의 보상이나 대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고 시간상의 딜레이까지 있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과거의, 심지어 내 부모나 조부 이상의 과거에 그들이 선택한 행동과 행위의 결과로까지 주어진다.


하다못해 논밭에 뿌리는 곡식도 봄에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데, 인생의 오늘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세상과 삶의 원리를 어느 정도만 이해한다면, 지금 우리가 중국시장에 목매고 눈앞의 적자에 조급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대상으로 뭘 한다고 해서 지금 바로 상황이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나에게 주어질 미래와 내 혈육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낯 부끄럽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에 바빠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선대의 선택과 다름이 없는 무한의 발전과 승리를 목적하며 미국, 일본, 유럽의 ‘진짜 덤벼볼 만한 놈들’을 목표로 미래의 주도권이 숨겨진 아이템에 집착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선진시장에 뛰어들어 무모하지만 위대한 전투를 벌이고, 연구실과 공장에 틀어박혀 제품 개발에 자신을 녹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경험했고, 중국을 공부했고, 중국을 누렸던 이들에게는 30년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과 그 긴 시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너무도 중국을 모른다.


엿 같고 개 거지 같아도 세계의 두 축 중 하나가 되어버린 중국.


알아도 안 것 같지 않게 말도 안 되는 무브를 선보이고, 그 덩치에 안 어울리는 촐싹맞음으로 무수히 많은 신규 디테일들을 쏟아내는 중국.


그 중국과의 시간 30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모두는 빚이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는 욕심이 하나 있었다.


지금의 수에즈 운하가 있는 이집트를 꿀꺽하는 것이었다.


이유가 뭐 중요하겠는가. 잘나가던 나폴레옹이 먹고 싶으면 먹으러 가는거지.


그렇게 배고픈 미식가와도 같이 이집트로 원정을 떠나며 나폴레옹은 대규모 병력만이 아닌 175명의 비전투 인력도 대동한다.


역사, 문화, 지리, 종교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화가, 기술자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박 터지게 영국, 오스만튀르크와 이집트 쟁탈전을 벌이는 와중, 그들에게는 이집트 연구를 지시한다.


나폴레옹은 이 전쟁에서 패했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혼자 빤스런을 해야 할 정도로 졌다.


하지만 이 175명은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와 30년간 총 21권의 이집트 연구 문헌을 내놓는다.


그 책의 제목이 ‘이집트지’이다.



그리고 그 책은 이집트학이라는 것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집트를 공부하려면 카이로가 아닌 파리로 가는 것이 상식이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갑자기 우리의 30년에 화가 나지 않는가.


아직 우리에게는 중국에 관한 ‘이집트지’가 없다.


그 시간의 결과가 보이는 것, 잡히는 것으로 없다면, 그 시간의 가치와 몫은 우리 모두의 안에 담겨있다.


아니, 우리가 모두 바로 ‘이집트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을 멀리해서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도망쳐도 안 된다.


한국의 누군가가 만들어낼 세계 최고의 제품, 인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사상과 기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중국을 놓지 않고 이 시간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빤스런 한 나폴레옹이 떠난 자리에 잠시잠깐 베드로를 소환하겠다.


맞다. 그 의심병 환자 베드로, 너 위에 교회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한 반석 베드로.


적의 심장에서 선교하겠다고 용감무쌍하게 로마로 향했지만 교인들 싹 다 잡아 죽이는 후달리는 상황에 내몰리자 베드로 역시 도주를 결심한다.


베드로는 원래 그런 심약한 인간이었으니 뭐 이걸 나무랄 이유는 없다.


도주 중 그래도 잠은 자야 할 것이니 길거리에서 쪽잠을 자고 있던 와중, 꿈속에서 예수를 만난다.


십자가를 들쳐 매고 자기와 반대길로 향하는 예수를 향해 소리친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딜 가시나이까!)”


질질 짜며 따라가니 예수가 그런 베드로를 보며,


“네가 이렇게 도망가니 나라도 저길 가야 할 것 아니냐...”


잠에서 깬 베드로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로마로 향한다.


그리고 선교 중 잡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생을 마감한다.


오늘날, 베드로가 그렇게 죽은 로마에는 예수의 공식적인 땅 ‘바티칸’이 있다.


난 나 스스로와 내 민족의 능력에 대해 베드로보다 더 많이 의심한다.


예수처럼 믿고 의지할만한 이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약속받은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섯 편의 긴 이야기 속에서 함께 보았듯, 모든 것들이 현상과 사실로 내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난 결정했다.


그리고, 함께 중국을 이야기하고, 중국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묻는다.


“쿼바디스 도미네!”


[한중수교 30주년, 그 첫 번째 이야기]

[한중수교 30주년, 그 두 번째 이야기]

[한중수교 30주년, 그 세 번째 이야기]

[한중수교 30주년, 그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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