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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Aug 08. 2022

möbius strip] 중국은 왜 우리에게 열광했는가

한중수교 30주년, 그 네 번째 이야기


우리는 앞서 살펴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만 중국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역시 우리에게 멱살이 잡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의 대중국 수출 품목 80%가 ‘한한령’이 아니라 마오쩌둥 할애비가 와도 못 막을 중간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중간재 중 60%가 수출 상위 품목 10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한중수교 30주년, 그 세 번째 이야기]


우리가 밉든 곱든, 지들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들을 사 갔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한령’에 겁먹고, 기자들은 중국의 ‘콘텐츠 규제’, ‘한국 제품 보이콧’으로 마치 대중국 수출의 종말이 온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는 한중 양국에 관한 수많은 관념 속에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중국시장 내 우리 소비재의 위상이다.


우리 소비재의 대중국 수출액은 전체 대중국 수출액 중 꼴락 5%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보면 더욱 초라해서, 1.2%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중국 전체 수입 소비재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가진 위상은 3%에 불과하다.


그 얼마나 속고 살았는가...


“한국 화장품이 중국 시장에서 대단해요.”

“불닭볶음면이 중국에서 대박 났어요.”

“이브아르(LG생활건강의 보톡스 브랜드)가 중국에서 대세!”와 같은 자화자찬에 우리가 만족하고 있던 사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올랐겠지만, 중국 소비재시장의 나머지 97%는 달나라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더 속상한 것은 이것이 너무도 달콤한 속임수라는 것이다.


어느 소비재든 이 3%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이 속한 해당 품목과 산업에 소위 대박이라는 스파크가 튀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활활 타올랐던 것은 화장품일 것이다.


우리 소비재의 대중국 수출 중 66.1%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초화장품(HS330499)이다.


그리고 2021년 기준,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 10조 5천억 원 중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53.2%(홍콩 포함 시, 61.3%)이다.


화장품 수출액, 무역수지 추이


이게 정상인가? 어느 대목, 어느 부분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화장품 산업은 중국시장으로 인해 스스로만 느끼기에 거대해졌고, 중국시장의 외면으로 찌그러지며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정상이 정상이 돼가는 것인지, 한국의 화장품 산업은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중국 화장품 수입액 국가별 비중 추이


흥행을 위해 떠드는 놈들은 대단히 영악하다.


일반 대중이 듣고 싶어하고, 듣기 쉽고, 듣기 자극적인 말들만 쏟아내기 바쁘다.


먹고살라면 그래야 하고, 외면당하거나 내몰리지 않으려면 사실 방법이 없다.


그래서 버림받고 작살나는 그 품목, 그 산업의 현상만 그려내며, 그 원인에 대한 소설을 써댄다.


물론 중국의 잘못, 중국의 책임, 중국의 교묘함을 주제로 말이다.


떠드는 놈들이 아무리 까대도 진실은 말이다, 우리 산업의 성장과 찬란한 번영, 초라한 최후에 중국 따위가 의도해서 할 수 있던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라고들 한다. 어떤 결과의 원인을 잘 모르겠으면 그 시작부터 보는 것이 맞다.


해당 산업에 대한 중국의 외면과 우리 몰락의 원인이 궁금한 것이니, 그 시작인 ‘중국의 열광’부터 들여다보자.


중국이 우리에게 열광한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처음 열광한 2000년대, 사실 우리는 중국에 관심이 1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미국, 일본, 유럽, 중동 등 돈 많은 나라에 유수 선진국 제품들을 제치고 우리 제품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 아등바등거리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도전은 꽤 오랜 시간 전부터 시작되었다.


전근대 식민지 국가에서 현대화된 민주국가를 겁나 빡세게 일구어 놓았지만 고립된 작은 시장에 한계를 느끼며 ‘세계로 뻗어나가야 살 수 있다’,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과제를 만났다.


메이지 유신으로 현대화된 일본에게 심하게 뚜까 맞은 트라우마까지 있기에 한이라는 콤플렉스는 보잘것없던 한국을 초현실적 수출 강국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당시 아래의 슬로건에서 찾을 수 있다.


‘선도하는 기업’, ‘세계 속의 기업’, ‘초일류 기업’


손발이 오그라드는 당시 기업의 보편적 슬로건을 통해 그들의 경쟁상대가 ‘선진국 초강대기업’이 었으며, 그들의 목표가 ‘세계 정복’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 말도 안되는 목표를 향한 노력이, 정말 말도 안되지만 그 결과를 얻었다.


반세기만의 노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진국 일류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없이, 관심조차 없던 옆 나라 중국이 반응한 것이다.


개방개혁을 통해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던 중국에서 우리의 제품을 사서 쓰기 시작했다.


근데 그 식구가 엄청나니 중국의 호응이 우리를 배 불린 것이다.


그럼 중국은 왜 우리에게 호응한 걸까?


난 그들이 느낀 ‘합리적 탁월함’이 우리를 선택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으로 시청자를 압도당한다.


일본 영화는 그 유려함과 심오함이 몹시 대단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중국인에게 딱히 공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된 한국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것만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후지지 않은, 현실감까지 넘치는 액션을 보게 된다.


연출과 연기가 훌륭하고 그 세련됨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권선징악의 시원함, 전화위복의 긴장감이 당시 중국인의 수준에 딱이다.


서민의 것을 서민의 것 이상으로 풀어내며 그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는 예상 너머의 엔딩으로 마지막엔 넋이 나가버린다.


우린 그것을 ‘감동’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품을 알고, 세계적인 명품을 소유하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세계적 명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지향하며 그들이 조금만 무리하면 소유가 가능한 수준의 우리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이라는 ‘합리적인 탁월함’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수입 소비재시장 단 3%를 득템하며 중국 특수를 누렸다.


핸드폰, TV, 모니터, 자동차, 화장품...


그리고 매 사이클마다 우리는 중국시장에 안주했고, 세계 정복을 잊었으며, 그렇게 몰락했다.


물론 나에게는 중국생활 30년간의 경험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품목의 새로운 사이클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새로운 믿음도 있다.


우리에게 다가올 분명한 미래는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중국 수입 소비재시장 3% 이외에 나머지 97%가 결정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과거와 완전히 다른 미래.


중국과 우리 사이에는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한중수교 30주년, 그 마지막 이야기] ‘떠나는 자와 돌아오는 자’로 찾아뵙겠습니다.


[한중수교 30주년, 그 첫 번째 이야기]

[한중수교 30주년, 그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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